200곳 지정…현장 가보니 시설 빈약하고 출입 제한 일부 지정 사실조차 몰라 ‘주민 폭염 대피용’ 무색
폭염 경보가 내려졌지만 LA시 '쿨 스팟'으로 지정된 일부 시설의 관계자들은 해당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노먼디 레크리에이션 센터, 라파예트 커뮤니티 센터, 샤토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다목적 공간. 김상진 기자
남가주 지역에 폭염이 지속되자 LA시 등이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쿨링 센터’ 또는 ‘쿨 스팟(Cool Spot)’ 목록을 일제히 대중에 알리고 있다.
특히 리버사이드, 샌버나디노 카운티 등은 10일(오늘) 오후 8시까지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각 지역 ‘쿨링 센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그 역할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LA시는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대응해 200곳 이상의 공공시설을 ‘쿨 스팟’으로 지정하고 시민들에게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쿨 스팟’으로 분류된 곳이라 해도 해당 건물의 기능이 특별히 바뀐다거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조치가 따로 취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본지는 LA시가 제공한 ‘쿨 스팟’ 목록을 토대로 한인타운 내 지정 기관들을 직접 찾아가 봤다.
먼저 LA시는 ‘쿨 스팟’에 대해 “폭염 시 누구든 찾아가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LA시가 ‘쿨 스팟’으로 소개한 장소 중 일부는 실제로 일반 시민의 실내 이용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쿨 스팟’으로 지정된 노먼디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경우 등록된 프로그램 참가자만 이용할 수 있다. 센터 관계자는 입장 가능 여부에 대해 “등록된 프로그램 참가자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의 직원 멘데스 씨는 “여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쿨링 센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내부를 살펴보니 잠시 앉아 있을 의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쿨 스팟’인 샤토 레크리에이션 센터도 마찬가지다. 서머캠프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일반인의 입장이 제한됐다. LA시가 제공하는 ‘쿨 스팟’ 목록만 보고 대낮에 무더위를 피해 해당 기관을 방문하면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자칫 입장 자체도 불가능할 수 있다.
본지가 한인타운 내 ‘쿨 스팟’ 여러 곳을 돌며 취재를 하는 동안 LA의 낮 기온은 90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만약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대중교통 등을 주로 이용하는 노약자 등이 잠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쿨 스팟’을 찾는다면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셈이다.
일례로 코리아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이하 시니어 센터) 인근 서울국제공원 레크리에이션 센터도 LA시가 지정한 쿨 스팟이다. 이곳 역시 서머캠프가 진행 중인 관계로 실내 공간 이용은 불가능하다.
이 센터 관계자들은 ‘쿨 스팟’ 지정 여부조차 모르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행인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야외의 그늘진 테이블뿐이었다. LA시와 ‘쿨 스팟’ 지정을 두고 충분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시니어 센터 한 관계자는 “어차피 일반 시민들이 드나드는 공공시설을 ‘쿨링 센터’로 바꿔 부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시정부가 실제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지도 의아하다”며 “정부 기관의 전형적인 ‘전시 행정’인데,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게 목적이라면 에어컨이 시원한 은행이나 쇼핑몰도 목록에 넣으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인타운 내 라파예트 커뮤니티 센터의 경우 출입은 가능했다. 체크인 과정만 거치면 달랑 의자 세 개가 놓인 로비 공간에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다.
이 센터의 담당자 수자나 사나브리아는 “오늘은 ‘쿨링 센터’가 아니다”라며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는 날에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LA시 ‘쿨 스팟’ 목록에 포함된 맥아더공원 내 레크리에이션 센터는 아예 관련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 센터 관계자는 “우리는 그런 서비스(쿨링)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외에도 본지는 LA카운티가 ‘쿨링 센터’로 안내한 도서관 세 곳에 직접 전화를 걸어 운영 여부를 확인했다. 윌셔 도서관, 워싱턴 어빙 도서관, 하이드파크 미리엄 매튜스 도서관 등 세 곳의 관계자 모두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다”고 답했지만, ‘쿨링 센터’로 ‘지정’된 사실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쿨링 센터’는 대부분 평소에도 개방된 공공시설이다. 결국 기존 공공시설에 ‘쿨링 센터’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안내할 뿐, ‘폭염’이라고 해서 뚜렷한 역할 변화나 차이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