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기로 했다. 섣부른 인하는 서울 집값 상승만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5%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금통위원 6명 전원 일치다. 한 차례 숨고르기하며 6ㆍ27 대출 규제 효과로 주택시장 과열이 진정되는지 지켜본 후 추가 금리 인하 시기와 폭을 결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인하의 발목을 잡은 건 고삐 풀린 서울 집값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수도권에 집중된 집값 상승 속도가 지난해 8월보다 빠르다”며 “정도로 따지면 지금이 더 경계감이 심하다”고 했다. 한은은 지난해 8월에도 금리 인하로 경기 회복의 마중물을 부을 거란 시장의 기대를 꺾고 부동산 과열 우려를 앞세워 동결을 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43% 뛰었다. 2018년 9월 둘째 주(0.45%) 이후 6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집값이 더 오를 거란 기대가 만연할 때, 저금리 기조가 더해지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사려는 수요가 커질 수 있다. 한은은 6ㆍ27 대책 전 늘어난 주택 거래로 8~9월까지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올해 8월 주담대가 8조원 가까이 급증할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지난해 8월(8조5000억원) 이후 최대 수준이다.
지나친 가계부채는 소비를 짓누르고 경제 성장을 제약한다. 특히 한국은 자산의 부동산 쏠림이 심하다 보니, 향후 집값이 하락할 경우 소비 침체가 더 가속화할 수 있다. 이들이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도 나빠진다. 이 총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0%(올해 1분기 89.4%)에 가까워 이미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임계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와 한은은 이 수치가 점진적으로 80% 이하에 수렴하도록 가계부채를 관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시기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이번 동결의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여파에도 여전히 고용 등 경제지표는 호조를 나타내고 있다. 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7월 말 금리를 동결하고, 향후 인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날 공개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19명의 Fed 위원 중 다수가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위험을 지적했고, 이 가운데 7명은 연내 금리 인하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이 먼저 금리를 내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2%포인트보다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금 이탈과 환율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치면 1%대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전망 때보다 민간 소비가 개선되고 있지만, 건설 투자는 더 나빠졌다고 언급했다. 다만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3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집행으로 성장률 추가 둔화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은은 이번 추경으로 올해 성장률이 지난 5월 전망치(0.8%)보다 0.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시장은 일단 8월 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통위원 6명 중 4명도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집값이 안 잡히고 관세의 부정적 영향은 커지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 총재는 “성장과 금융안정의 상충이 심해질 경우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금리를 결정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금통위원들의 의견도 많이 나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