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에 대한 유럽의회 불신임안이 10일(현지시간) 부결됐다.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불신임안은 찬성 175표, 반대 360표, 기권 18표로 통과되지 않았다.
투표에는 720명 의원 중 553명이 참석했는데, 가결되려면 투표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이번 불신임안은 극우 성향 정치그룹인 '유럽 보수와 개혁'(ECR)의 루마니아 출신 초선 게오르게 피페에라 의원이 주도했다.
피페에라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화이자 백신 계약을 '밀실' 처리하는 등 불투명하고 중앙 집권적인 방식으로 집행위를 운영한다며 불신임안을 추진했고, 상정 요건인 72명 의원의 동의를 확보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2021년 팬데믹 당시 200억 유로(약 31조원) 규모 백신을 체결하면서 구체적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비판받은 건 사실이다.
당시 계약 성사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1심 법원 판단이 5월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불신임안 부결은 예견된 결과였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제1당 격인 중도 우파 성향 정치그룹 유럽국민당(EPP) 소속인 데다 원내 두 번째 규모인 중도 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도 불신임안에 반대하기로 하면서 가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것으로 관측됐다.
발의자인 피페에라 의원이 속한 ECR 내부에서도 불신임안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실제로 ECR에 속한 주요 정당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l)은 불신임안 자체를 반대하기도 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무난히' 살아남긴 했지만,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2019년 취임한 이후 지난해 연임에 성공하며 2기 집행부를 이끄는 그의 정책 추진 방식이 독단적이라는 불만은 꾸준히 제기됐다.
중도 진영은 연임 이후 경쟁력 강화를 앞세워 기존의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정책 추진을 위해 강경우파 , 극우 진영과 손을 잡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라체 가르시아 페레스 S&D 대표는 "집행위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중도 정치그룹 '리뉴 유럽'(Renew Europe)의 발레리 아이예르 대표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폰데어라이엔에 대한 우리의 지지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로마를 방문 중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부결 직후 엑스에 올린 글에서 "전 세계적으로 변동성과 예측 불확실성이 있는 때 EU는 행동할 힘과 비전과 역량이 필요하다"며 "모두가 함께 공동의 과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U 조약에 따르면 불신임안 가결 시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27명의 집행위원단 전원이 사퇴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역대 불신임안이 가결된 적은 없으나, 1999년 자크 상테르 당시 집행위원장이 부패 스캔들 여파로 불신임안이 상정되자 표결 전 집행위원단 전원이 자진 사임한 전례가 있다.
폰데어라이엔의 전임인 장클로드 융커(2014∼2019년) 임기 때도 불신임안이 상정됐으나 큰 표차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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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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