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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카운터어택] 바다에서 헤엄친다는 것

중앙일보

2025.07.10 08:12 2025.07.1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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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 스포츠부 기자
외롭고, 힘들고, 지친다. 슬슬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면, 당장에라도 기권하고 싶은 유혹이 고개를 든다. 그래도 일단 이를 악물어본다. 무념무상으로 팔을 휘젓고 다리를 움직인다. 그렇게 아득하던 결승선이 가까워진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오픈워터 스위밍(open water swimming) 선수들 얘기다.

오픈워터 스위밍은 수영장이 아닌 바다·강·호수 등에서 자유형으로 헤엄치는 종목이다. 최장거리인 10㎞ 레이스는 ‘수영의 마라톤’으로 불린다. 레인이 따로 없으니, 선수들 간에 몸싸움이 치열하다.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햇빛·파도·바람 등 온갖 자연의 변수와 싸워야 한다. 엄청난 체력과 그보다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오픈워터 국가대표 박재훈에게는 바다, 강, 호수가 ‘수영장’이다. 그는 올해도 의미 있는 도전을 이어간다. [사진 대한수영연맹]
한국 오픈워터 국가대표 박재훈(25)은 “8~9㎞ 지점쯤 가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터치패드(선수의 손이 닿으면 최종 기록이 표시되는 장치) 하나만 바라보고 앞으로 가는 거다”라고 했다. 페이스가 좋을 땐 그나마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더 가도 소용없다’ 싶을 땐 실낱같이 남아있던 체력마저 바닥난다. 그래도 오픈워터 선수들은 또다시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올림픽 같은 세계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지가 이들을 ‘고생길’로 이끈다.

한국은 오픈워터 스위밍의 불모지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 남자부 출전 신청 선수는 11명에 불과했다. 그중 3명이 경기 도중 기권했고, 1명이 불참했다. 완주한 7명 중 박재훈과 오세범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여자부는 더 적다. 출전 선수 4명 가운데 고교생 김수아와 황지연이 1·2위로 발탁됐다. 이들 넷이 오는 15일 시작하는 싱가포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오픈워터 경기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세계선수권에선 60여명이 한꺼번에 경쟁한다. 남녀 합해 4명뿐인 한국 선수단은 실전 대비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박재훈은 “국제대회에선 선수들끼리 서로 몸싸움을 벌이다 팔이 엉킨 상태로 수영해야 할 때도 있다”면서도 “이제는 경기 중에 몇 대 얻어맞아도 당황하지 않고 내 레이스를 한다. 그 정도로 익숙해졌다”고 털어놨다.

박재훈은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오픈워터 동메달을 땄다. 지난해 2월 도하 세계선수권에서는 부진해 7월 열린 파리 올림픽엔 나가지 못했다. 오픈워터가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사기도 떨어졌다.

그래도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가 파도에 맞선다. 세계의 벽이 여전히 높아도, 확고한 ‘아시아 1위’로 자리 잡겠다는 목표를 품었다. 경남 김해 인근 바다의 뙤약볕 아래서 수없이 물살을 가르며 무더운 여름의 시작을 버텨냈다. 그 사이 얼굴과 온몸은 까맣게 그을렸고, 꿈은 더 자랐다. 때로는 이렇게 금빛 메달보다 빛나는 도전이 있다.





배영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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