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 소방관. 그들이 119 구급차를 몰며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백경 소방관은 구급대원으로 9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출동 현장에서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아서일까요. 그는 매일 유서를 쓰고 잠이 듭니다. 그가 매일 마주하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 자세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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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벨이 울렸다.
동시에 프린터가 지령서를 출력했다.
‘머리가 아프다. 빨리 와 달라.
수시 이용자 김OO’
눈에 익은 이름이었다.
아니, 눈에 익다 못해 보기만 해도
뒷머리가 쭈뼛 솟는 이름이었다.
그는 두통으로, 요통으로, 복통으로, 치통으로
아픈 부위를 매번 바꿔 가며 신고했다.
올해만 119 신고 건수가 100건을 넘겼다.
# 택시처럼 구급차 부르는 남자
집 앞으로 달려가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낮이나 밤이나
똑같은 해병대 군복에 정글모 차림을 하고
구급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가 멈추면
제 손으로 처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씨X, 구급차가 왜 이렇게 늦어?”
라고 씹어뱉었다.
구급차는 그의 전용 리무진이요
구급대원들은 하수인인 셈이었다.
“OO병원으로 갑시다.”
말하는 입에서는 늘 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구역질을 참고 남자를 응급실에 데려가면
그때부터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그가 이미 온 시내 병원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미수금을
납부하지 않는 건 물론이요,
의료진들을 조롱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의도적으로 싸움을 유도했다.
한 번은 병원 보안요원 면전에 대고
‘병신’이라고 했다가
멱살 잡히기 직전까지 갔는데,
때마침 출동한 경찰이 제지한 덕에
보안요원은 손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