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뒤늦게 조명된 웰메이드 영화 '보통의 가족'...파리도 홀렸다

중앙일보

2025.07.10 19: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영화 '보통의 가족'의 한 장면. 범죄를 저지른 자식들의 자수 문제를 놓고 이견이 생긴 재완(설경구), 재규(장동건) 형제가 다툼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보통의 가족'(허진호 감독)이 최근 미국 유명 대중문화잡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2025년 상반기 최고 영화 10편' 중 하나로 선정됐다.

올 상반기 북미 개봉 영화를 대상으로 선정한 결과다.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며,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씨너스: 죄인들' '브링 허 백' 등의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버라이어티는 "첫 장면부터 관객을 사로잡는 이 영화는 긴장감 넘치고 도덕적으로 고통스러운 드라마"라고 평했다.

지난해 10월 국내 개봉 때는 65만 관객에 그쳤지만, 뒤늦게 해외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은 것이다.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베스트셀러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했다.

소중한 자식들이 저지른 범죄를 눈 감아줘야 할지, 아니면 응당의 처벌을 받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가장들이 내린 각기 다른 선택이 불러오는 파멸적인 결과를 그렸다. 돈이라면 영혼도 팔 것 같은 변호사 재완(설경구)이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고, 정의롭고 이상적인 인물로 보였던 의사 동생 재규(장동건)가 용서받지 못할 선택을 내리는 반전이 관객의 뒤통수를 때린다.

'보통의 가족'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 사진 연합뉴스
현재 차기작 '암살자들'의 프리 프로덕션에 한창인 허진호 감독을 8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영화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 감사하다. 배우들도 다들 기뻐하고 있다"며 "프랑스 파리에서 영화가 상영 중인데, 관객 수가 15만 명을 넘었다"고 말했다.


Q : 교육 문제 등 한국적 특성이 담겼는데, 해외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
"토론토 국제영화제, 런던 한국영화제, 우디네 극동영화제, 타이베이 영화제 등에 초청 받아 해외 관객을 만났다. 아이들의 폭력성 문제를 다루다 보니 동서양 상관 없이 다들 관심을 갖더라. 계층 문제 또한 모두에게 공감 가는 이슈다.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미국에 갔는데, '고교생 학부모들은 이 영화를 꼭 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Q : 원작에서 꼭 옮겨오려 했던 메시지는 뭔가.
"과연 무엇이 아이를 위한 선택일까 라는 것과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돈만 바라보던 재완이 어느 순간 윤리와 도덕을 생각하고, 정의로워 보이던 재규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누구나 양면적 모습이 있고, 인간의 신념과 도덕적 가치가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설정이 재미 있었다.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이런 부분들을 배우들과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영화를 찍었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보통의 가족' 감독 및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허진호 감독,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사진 연합뉴스

Q : 한국 배경으로 바꾸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입시 지옥이 된 교육 문제, 빈부 격차 등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담으려 했다. 재규의 아들 시호(김정철)가 강북에서 살다가 사교육 1번지 강남으로 이사 오면서 갖게 된 불안감이 사건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실제 대치동 학원가에서 찍었다."


Q : 사회 문제를 다룬 첫 작품이다.
"그 전엔 내 영화가 따뜻했는데 이번 영화에선 차가워지고 관찰하는 모드가 됐다. 고교생 자식을 키우다 보니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 교육이 어쩌다 이리 엉망이 됐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된 영화다. 아이들이 입시 지옥을 겪으며 폭력성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 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의 식사 장면. 허진호 감독이 가장 공들여 찍은 신이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Q : 가족 식사 장면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가장 공 들여 찍었다. 세 번의 식사 장면에서 세 대의 카메라를 써서 각각의 관계를 보여주려 했다. 액션 영화처럼 찍자고 얘기했다. 심리적 액션 신이랄까. 배우들의 호흡이 너무 좋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찍는 어려운 장면이었는데 다들 열심히 즐겁게 찍었다. 그러면서 더욱 친해지고 의리까지 생긴 것 같다(웃음)."


Q : 아역 배우들까지 연기 구멍이 전혀 없더라.
"그래서 배우들이 정말 고맙다. 시호를 연기한 김정철은 전교 1등 하는 우등생이다. 지금은 고3이다. 무대 인사 할 때마다 엄마 역의 김희애 배우가 '우리 아들, 전교 1등이에요'라고 자랑을 했다. 혜윤 역의 홍예지는 드라마·영화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성인 배우들은 다들 자식을 키우는 경험이 있어 감정 이입에 도움을 준 것 같다."

영화 '보통의 가족' 촬영 현장에서 허진호 감독이 아역 배우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Q : 관객에 주고 싶은 메시지는.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케 하는 작품이면 좋겠다. 영화를 통해 답을 내린 게 아니라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재완과 재규, 누구의 선택을 따를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답이 없는 것 같다. OTT(디즈니플러스)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보고 그런 점을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Q : 차기작이 '암살자'인데, 예민한 소재 아닌가.
"1974년 영부인 저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저격 사건 자체를 조명한다기보다는 왜 이렇게 의문 투성이의 사건이 일어났는지, 왜 우연적인 일들이 꼬리를 무는지 기자 입장에서 파헤치는 이야기다. 박해일과 이민호가 기자, 유해진이 형사 역을 맡는다. 주요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대본을 손 보는 중이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영화 'JFK' 느낌도 날 것 같다. 현 시점에서 왜 이 이야기가 필요할까 스스로 질문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정현목([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