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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장 아들과 짜고 거짓 진료…펫보험금 5800만원 챙겼다

중앙일보

2025.07.11 13:00 2025.07.1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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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네 마리를 키우는 A씨. 반려견들은 최근까지 2년3개월에 걸쳐 동물병원에서 120여 회 진료를 받았다. A씨는 반려동물보험(펫보험)을 통해 치료비와 수술비 명목으로 보험사에서 5800만원을 받았다. 보험사 조사 결과 A씨는 동물병원장인 아들과 짜고 보험금을 청구한 걸로 드러났다. 질병명을 속이고, 거짓으로 진료기록을 꾸몄다.

12일 손해보험협회·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펫보험 가입은 지난해 말 기준 16만2111건(799억원). 처음 펫보험이 출시된 2018년과 비교하면 20배 넘게 늘었다. 삼성화재·DB손해보험·KB손해보험·현대해상 등 국내 9개 손해보험사는 개·고양이를 대상으로 진료비, 손해배상책임(개물림), 장례위로금 등을 보장하는 보험상품을 팔고 있다.
챗GPT 이미지 생성.
가입자가 늘면서 펫보험 사기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체 규모는 아직 공식적으로 조사되지 않았지만 한 보험사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부정 청구가 드러난 사례는 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배 이상 늘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동물병원의 진료비 전부가 비급여에 해당하기에 실손의료보험과 같이 과잉진료에 따른 손실 구조가 반복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의심되는 청구가 많지만, 적발이 쉽지 않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질병 발병 후 가입, 보험 돌려막기도

펫보험 사기는 어떻게 이뤄질까. 복수의 보험사를 통해 적발 사례들을 들어봤다.

서울에 사는 40대 B씨는 유기견 3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유기동물을 입양하면 보험료를 1년간(1000만원 한도) 내주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았다. 병원에 요청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슬개골 탈구는 십자인대 파열(300만~500만원)로, 중성화 수술은 레이저 테라피(25만원)로 바꿔 보험금을 청구했다.

반려견 한 마리를 여러 보험에 가입하고, 중복 청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술비가 300만원 나오면 3개 보험사에 250만원씩 청구하는 식이다. 청구권자는 가족도 가능하기 때문에, 청구권자를 다르게 했다. 같은 품종을 여러 마리 키우면서 한 마리만 가입하고 보험금을 돌려 막는 것도 흔한 적발 사례였다. 요도질환 등에 이미 걸려있는데 반려견의 이름을 바꾸고, 소유자를 배우자로 바꿔 보험에 가입하는 수법도 있었다.



반려견 등록률 30%…“개체 인식 어려워”

펫보험의 문제의 핵심은 투명성 부족이다. 반려견 등록률은 30%에 불과하다. 반려묘 등록은 의무도 아니다. 등록번호가 있다고 해도 개체 식별이 쉽지 않다. 보험사에서는 등록번호, 반려동물 사진, 비문(코 주름) 사진 등을 요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유자와 반려동물명 정도만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DB손해보험 관계자는 “식별표는 목걸이 형식이라 옮겨서 부착할 수 있다”며 “수의사조차 비문만을 보고 개체를 식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과 달리 진료 수가 체계도 없고, 질병코드도 표준화돼 있지 않다. 이에 최근 농림수산식품부는 당뇨·고혈압 등 3511종의 동물 질환을 분류하고, 초진과 입원 등 4930종의 질병 코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권고 사항일 뿐 병원에서 쓰는 건 의무가 아니다. 수의사가 공모해 보험 사기가 이뤄지기도 한다. 수의사법 위반 시 과태료 100만원 이하 부과 등 처벌 수위가 약하고 형사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국정기획위 "표준수가 의무화 검토"

지난 5월 강원도 춘천역광장에서 반려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 김성룡 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은 올해 5월부터 펫보험 재가입 주기를 1년으로 줄이고, 자기 부담률을 30% 올리라고 권고했다. 이를 반영한 상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펫보험 시장이 위축될까봐 보험사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보험 사기가 늘어 자기 부담률을 높이면 보통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사랑하지만, 반려동물을 매개로 한 부정한 보험금 청구에 대한 범죄 의식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보험연구원 한진현 연구위원은 “진료비를 표준화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보험 사기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고, 소비자도 진료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김규동 KB손해보험 유닛장은 “보험회사는 물론, 정부·수의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협업해야 한다”며 “보험사는 동물병원 진료·청구 데이터(품종별, 나이별 상해·질병 통계)를 활용해 다양한 신상품을 개발하고, 정부는 동물등록제도를 보완해 개체 식별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려동물 표준수가제 도입 등을 통한 펫보험 활성화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동물보호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이 내용을 논의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경제2분과 중소벤처·농식품·해양 소위원장)은 통화에서 “필요하다면 (표준수가제 적용 등) 의무화하는 부분도 검토하고 있다”며 “수의사들의 의무를 강화하거나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입법을 통해 해결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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