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에선 추모 정치가 당시 정권의 운명을 뒤흔드는 계기가 되는 일들이 있었다. 마오쩌둥의 동반자였고 마오의 친위 쿠데타였던 문화혁명 시기 국정을 보살피던 저우언라이 국무원(행정부 격) 총리가 1976년 1월 사망하자 베이징 천안문 광장은 추모 열기로 휩싸였다.
이 일은 곧 문화혁명을 주도해 온 사인방의 숙청과 덩샤오핑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정치 자유화의 아이콘이었다가 원로들에 의해 실각한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가 1989년 4월 사망하자 대학생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정치적 자유를 부르짖으며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 이 일은 결국 6·4 천안문 사태라는 공산당 정권에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은 참변으로 끝났다.
지난 3일은 2023년 사망한 리커창 전 총리의 70번째 생일이었다. 이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리커창을 기리는 장문의 논평을 6면에 게재했다. 리커창은 시진핑 정권 1·2기였던 2013~2023년 동안 권력 서열 2인자였다. 원로들의 막후 정치로 시진핑이 최종 낙점되기 전까진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진핑이 덩샤오핑이 정립한 집단지도체제를 와해시키고 마오 시대의 유산인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면서 리커창의 실권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총리가 총괄하던 경제 정책도 당 총서기인 시진핑의 최종 승인을 받도록 시스템을 고쳤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의 좌장이었던 그는 2023년 3월 수립된 3기 시진핑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퇴출됐고 그해 10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인민일보의 이번 리커창 추모 기사는 많은 해석을 낳고 있다. 이 기사를 그대로 옮겨 실었던 다른 관영 매체와 지방 매체, 주요 포털에서는 현재 이 기사가 모두 삭제됐다. 이를 두고 중국 고위층 내 권력 투쟁의 단면이 다시금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언론을 관장하는 당 선전기구가 시진핑 세력과 반(反)시진핑 진영 간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논평에선 ‘두 가지 확립(兩個確立)’, ‘두 가지 수호(兩個維護)’ 등 시진핑이 강조해 온 표현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리커창의 행보를 통해 현 체제와 대조되는 ‘민주적, 실용적’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논평의 첫 번째 소제목은 ‘공청단 사업을 당과 국가사업 대국에 복무시키는 데 힘썼다’였다. 공청단은 시진핑 집권 후 ‘전멸’ 수준의 숙청을 당했다. 2022년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선 후진타오 전 주석이 공개석상에서 퇴장당하는 듯한 모습이 등장했다.
논평은 또 리커창이 추진했던 공급 측 구조 개혁, 자유무역지대 설치, 빈곤 퇴치 등 주요 경제 성과를 자세히 소개했다. 시진핑 정권이 내세우는 치적 상당수가 사실상 리커창 주도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세 번째로 리커창이 “실사구시와 실무 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형식주의와 관료주의에 반대했다”고 언급했다. 최근 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불거진 ‘형식주의 배격’ 기조와 맞물리며 시진핑을 겨냥한 비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리커창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학적 정책 수립, 집단 지도체제’를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시진핑이 ‘핵심’과 ‘1인 권력’을 강조하며 사실상 1인 독재를 강화해 온 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메시지다.
이 추모 기사는 인민일보 지면에는 실렸지만, 관영 신화통신, 중앙TV(CCTV), 정부 공식 사이트와 지방 관영지, 주요 포털에서 모두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기사 작성 주체인 당사문헌연구원이 운영하는 ‘이론중국망(理論中國網)’에만 남아 있다.
이를 두고 인민일보가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기사 게재를 강행했고 친 시진핑 측이 사후에 다른 매체를 차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민일보는 지난해 말부터 신임 사장과 편집국장 등 고위 간부진이 잇따라 감사를 통해 교체되거나 조사받고 있다. 올 6월엔 홈페이지에서 부사장과 비서장의 이름이 사라졌다. 이런 내부 숙청이 진행되는 가운데, 시진핑은 지난 5월 하순부터 6월 초까지 약 2주간 공개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특히 6월 2일부터 4일까지 인민일보 1면에서 시진핑 관련 보도가 사라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리커창 추모 시기를 맞이해 그의 암살설과, 유족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미확인 정보들이 유포됐다. 그를 추모하는 관영 매체 공식 논평이 삭제된 것이 의혹에 다시 불을 지핀 셈이 됐다.
리커창 추모 논평을 둘러싼 공방은 당 선전기구가 시진핑과 반시진핑 간 새 격전지가 됐다는 의구심을 촉발한다. 최근 또다시 불거지고 있는 시진핑 하야·실각설과 맞물려 칼보다 강하다는 펜을 둘러싼 새로운 권력투쟁 양상이다. 물론 중국에선 펜보다 칼이 훨씬 강하다. 고대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저지른 것부터 현대에서 마오의 지식분자 탄압, 천안문 사태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항상 총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