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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시간 품은 유물 지켜라"…여름 문화유산 보존 전쟁 [비크닉]

중앙일보

2025.07.12 14:00 2025.07.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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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트렌드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여름 장마와 태풍, 후텁지근한 한여름은 사람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주지만, 수천 년 시간을 품은 문화유산에도 위협이 됩니다. 급격한 기온 상승과 습도 변화는 목재나 금속·섬유 등으로 구성된 유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죠. 그렇다면 국내 주요 박물관들은 귀중한 문화유산을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국내 대표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을 중심으로 문화유산 보존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국보 반가사유상의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온·습도 유지는 보존의 기본…재질별 다르게 관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약 20여 개의 수장고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유물의 재질에 따라 금속방·목재방·서화방 등으로 세분돼 있어요. 문화유산의 상태에 온도와 습도는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유지는 보존의 기본이죠. 예를 들어, 금속 유물은 부식 방지를 위해 상대습도(RH) 50% 이하를 유지하고, 목재와 서화류는 50~60% RH 범위를 지켜요. 습도가 급격히 오르는 여름철엔 금속방의 제습에 관리에, 건조한 겨울철에는 목재방의 가습 유지에 특히 신경을 쓴다고 해요.

그런데 전시공간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훨씬 복잡해집니다. 수장고처럼 유물을 재질별로 나눠 관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시 공간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유물까지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재질의 유물들이 한 공간에 함께 전시되니까요. 목재·금속·종이 등 다양한 재질이 혼재된 공간에서 각 유물에 맞는 개별 최적 환경을 제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국립중앙박물관
그래서 박물관은 모든 유물이 큰 무리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절충된 환경 기준을 설정합니다. 일반적으로 국내 박물관은 온도는 20±4℃, 습도는 50±10 RH%를 기준으로 둡니다. 이 수치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권고 기준을 바탕으로 한국의 기후 환경에 맞게 조정한 거죠. 이현주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전시실은 변동 폭이 크지 않도록 기준선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죠.

공조 시스템으로 기준 잡고, 다양한 장비로 세부 관리를
전시실 환경 기준선은 기본적으로 박물관의 중앙 공조 시스템을 중심으로 유지됩니다. 공조 시스템은 건물 내부의 온·습도부터 기류, 청정도 등을 조절해 쾌적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죠.
국립고궁박물관 열린 수장고 온·습도계 모습. 서혜빈 기자
유물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별도 전시 케이스를 마련하고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등 다양한 보조 기술과 장비가 활용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습제입니다. ‘아트소브(Art Sorb)’라는 이름의 조습제는 실리카젤을 활용한 습도 조절 제품으로, 전시 케이스나 수장고 내부에 설치해 상대습도를 유지하는 데 활용되죠. 특히 고문서나 회화처럼 습도에 민감한 유물 보존에 효과적이라고 해요. 일명 ‘물먹는 하마’의 박물관용 버전이라고 비유할 수 있어요.

전문 기업의 손길도 더해집니다. 제습·환기 솔루션 기업인 ‘휴마스터’의 경우 제습·청정·환기 시스템으로 전시공간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지난 2월 전주시에 있는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에 시스템을 설치했는데, 지하 공간 특성상 습도가 높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요. 업체는 서울시공예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휴시트’라는 패치형 조습제를 적용해 좁은 쇼케이스 안 습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고안하기도 했죠. 이대영 휴마스터 대표는 “박물관·전시관에 있는 물건은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므로 문화재 재질 안정성 평가도 받았다”고 했죠. 휴마스터는 내년 상반기엔 태국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도 진출한다고 해요.
휴마스터의 휴시트. 휴마스터
이런 기술이 부족했던 과거엔 오동나무도 널리 활용됐다고 합니다. 습기에 강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특성 덕분에 전시 벽면·수납장·유물 운반 상자 등에 활용됐죠. 최근엔 더 정밀한 소재가 등장하면서 오동나무 사용 빈도는 줄었지만, 유물 운송 시 여전히 사용된다고 해요. 이승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문화유산 보존에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미 산업계에서 검증받은 기술만 선별해 사용한다”고 강조했어요.

에너지 효율과 문화유산 보존 사이…현실 속 균형점 찾기
문화유산 보존을 우선순위로 두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박물관도 에너지 효율을 위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조 시스템을 통해 연중 내내 동일한 온·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클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국립고궁박물관은 전체 예산의 약 38%를 전기료로 지출하는데, 대부분 공조 시스템 운영에 쓰인다고 해요.
국립고궁박물관 열린 수장고. 서혜빈 기자
이현주 연구사는 “기후위기 시대에 에너지 효율도 중요한 과제가 된 만큼, 여름과 겨울처럼 극한 계절이 아닐 경우 유물 특성에 맞춰 기준선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승은 연구사도 “1~2℃ 수준의 온도 변화가 유물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며 “과도한 에너지 소비 없이 유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관리선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설명했죠.

문화유산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손상됩니다. 중요한 건 그 속도를 얼마나 늦추느냐죠. 박물관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고요. 박물관을 ‘문화유산 병원’이라고 비유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도 박물관 안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제습 전쟁이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혜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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