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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원폭 80년] 사라지지 않는 참상의 기억…위령비 "잘못 되풀이 말아야"

연합뉴스

2025.07.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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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하 지점서 160m 거리 '원폭돔'이 상징…인근엔 평화기념공원·자료관 조성 "1964년 점화 '평화의 불', 지구서 핵무기 없어지는 날 꺼질 것"
[히로시마원폭 80년] 사라지지 않는 참상의 기억…위령비 "잘못 되풀이 말아야"
투하 지점서 160m 거리 '원폭돔'이 상징…인근엔 평화기념공원·자료관 조성
"1964년 점화 '평화의 불', 지구서 핵무기 없어지는 날 꺼질 것"

(히로시마=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한여름 아침이었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태평양에서 날아온 미국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 도심에 투하한 사상 첫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폭발했다.
폭격기는 T자형 다리인 아이오이바시(相生橋)를 표적 삼아 원폭을 떨어뜨렸고, 주변 건물은 대부분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히로시마 인구는 약 35만 명이었는데, 1945년 12월까지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한반도 출신자도 2만∼3만 명가량 있었다.
히로시마는 도쿄나 오사카와 달리 대규모 공습을 받지 않아 미국 입장에서는 새롭게 만든 폭탄을 시험하기 좋은 장소였다. 일본군 주요 거점이어서 무기 공장도 있었다.
히로시마시는 원폭 투하 80년을 맞아 이달 8∼9일 주일 특파원을 대상으로 프레스투어를 진행했다. 연합뉴스는 독일, 프랑스, 중국 등 각국 매체와 함께 히로시마 원폭 유산과 피폭자를 취재했다.

◇ 원폭 돔 바닥엔 산산이 부서진 잔해 그대로…돔은 앙상한 철골만
히로시마 원폭을 상징하는 핵심 장소는 '원폭 돔'이다. 아이오이바시 바로 옆에 있는 원폭 돔은 1915년 히로시마현 물품을 진열하는 3층 건물로 준공됐다. 체코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중앙부 타원형 돔이 특징이었다.
원자폭탄은 이 건물에서 160m 떨어진 지점의 약 600m 상공에서 터졌다. 건물은 매우 심하게 훼손됐고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다. 외벽은 대부분 허물어졌고 돔은 철골 구조물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래도 측면이 아닌 수직 방향으로 충격파를 받았고, 일부 벽이 두꺼워 완전히 붕괴하지는 않았다.
일본 패전 이후 히로시마에서는 원폭 돔 보존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었다. 비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므로 허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피폭 이후 백혈병으로 숨진 소녀가 일기에 이 건물만이 원폭의 기억을 후대에 전할 것이라고 쓴 사실이 전해지면서 보존이 결정됐다.
원폭 돔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원폭 돔은 본래 건물을 둘러싼 울타리 바깥쪽에서만 관람이 가능하지만, 지난 8일 히로시마시 당국 허가로 안쪽에서 특별히 원폭 돔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히로시마시 직원은 소중한 문화유산이어서 잔해를 절대 밟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고 거듭 당부했다.
안전모를 착용한 채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가자 산산이 부서진 잔해들이 보였다. 원폭 돔 주변은 물론 안쪽에도 벽돌과 돌 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건물 입구로 추정되는 곳에서 올려다본 원폭 돔은 꽤 웅장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원폭 돔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안내한 봉사자이자 피폭자 후손인 히로타니 야스토시 씨는 "원폭 돔의 돔은 구리로 덮여 있었다"며 "구리는 철보다 녹는점이 낮아 녹았고, 철골 뼈대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 평화기념공원은 주민 수천 명 살던 곳…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있어
히로시마시는 원폭 투하 지점에서 반경 5㎞ 이내에 있는 보존 건물 86건을 '피폭 건물'로 관리한다. 이들 중 폭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 원폭 돔이다.
반경 1㎞ 안쪽에 있는 피폭 건물은 모두 9건인데, 원폭 돔에서 아이오이바시를 건너면 닿는 혼카와초등학교도 그중 하나다. 원폭을 견딘 철근 콘크리트 건물 교사(校舍)는 종전 이후 이재민 구호소로 사용됐고 지금은 평화자료관으로 쓰인다.
자료관에는 원폭의 위력을 보여주는 일그러진 병이 전시돼 있다. 원폭이 터졌을 때 중심부는 3천∼4천도의 열이 발생했는데, 그 영향으로 병이 녹아 기묘한 모양이 됐다. 병 안에는 당시 담겨 있던 액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원폭 돔과 혼카와초등학교 사이에는 원폭으로 희생된 사망자의 혼을 달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조성된 평화기념공원이 있다. 원폭 돔과 함께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상징하는 곳이다.
히로타니 씨는 "공원 일대에 6천500명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땅을 파면 유해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원폭 투하 이후) 피폭자는 이 공원에 들어갈 때 항상 경건한 마음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평화기념공원은 전후 일본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인 단게 겐조가 설계했다. 남쪽에 평화기념자료관과 국제회의장이 있고, 북쪽으로 이동하면 사망자 위령비와 '평화의 불'이 있다.
아치형 위령비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평화의 불 너머로 원폭 돔이 보인다. 평화의 불은 1964년 점화돼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고 히로타니 씨는 설명했다. 그는 지구상에서 핵무기가 없어지는 날이 불이 꺼지는 날이라고 덧붙였다.
위령비 아래에는 '편안히 잠드십시오.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비문에서 '잘못'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비석 앞쪽 설명문에는 "전쟁이라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말"이라는 문구가 있다.
원폭 돔과 평화기념공원에는 히로시마가 피해자라는 시각만 부각됐을 뿐,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책임 의식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히로타니 씨는 사견임을 전제로 "원폭이 투하됐을 당시 국적과 관계없이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며 "원폭 피해는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은 전쟁 전부터 일본에 많았고 차별을 받은 분도 꽤 있었다"며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도 히로시마에는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폭 투하 책임은 일차적으로 미국에 있지만 일본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견해에 대해 "(일본이) 한국을 공격해 들어가 식민지로 삼아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납득한다"고 말했다.
히단쿄 관계자는 지난 3월 한국 기자들과 만나 "피폭자 운동을 하면서 일본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한국을 식민 지배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평화기념공원 한편에는 히로시마 민단이 1970년 세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이 비석은 원래 평화기념공원 바깥에 있었으나, 1999년 7월 공원 안쪽으로 이전했다.

◇ 피폭자 유품·증언은 평화기념자료관에…"학생용 전시 추가 공개할 것"
원폭 투하 참상은 평화기념공원 내 평화기념자료관(이하 자료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단게 겐조가 설계한 자료관은 1955년 준공된 본관과 1994년 완공된 동관으로 구성된다. 현재 전시는 보수를 거쳐 2019년 선보였다.
도야 도시히로 자료관 부관장은 8일 "피폭자 시선에서 원폭 투하를 전하려 했다"며 "원폭이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는 점과 피폭자와 가족이 괴로움을 겪었다는 점 등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자료관에서는 원폭 투하 전후 히로시마의 모습을 비교하고, 피폭자 증언과 유품 등을 통해 원폭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다.
원폭 투하 시각인 8시 15분에서 멈춘 시계, 원폭 투하 지점과 1.5㎞ 떨어진 곳에서 3세 어린이가 타고 있었던 세발자전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녹아버린 불상 등이 눈길을 끈다.
'과거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명하고 강렬한 색', '정말로 지옥' 등 원폭 투하 당시와 직후 상황을 전하는 문구도 곳곳에 배치됐다.
자료관은 2023년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각국 정상이 방문한 것을 계기로 관람객이 대폭 늘었다.
2024년도(2024년 4월∼2025년 3월) 입장객은 전년도 대비 28만여 명 증가한 약 226만 명이었다. 자료관의 연간 방문자가 200만 명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도야 부관장은 "어린 학생이 보기에는 전시물이 다소 충격적이라는 의견이 있어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 전시를 공개할 예정"이라며 "소장 자료 중 일부는 상태가 나빠지고 있어서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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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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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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