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당시 6세…"日도 전쟁 중에 핵무기 개발 시도·전쟁이 문제"
피폭자 경험담 대신 전할 '전승자' 육성…증언 영상 활용한 '응답장치' 개발
[히로시마원폭 80년] 86세 日피폭자 "세번째 핵무기 사용 절대 안돼"
피폭당시 6세…"日도 전쟁 중에 핵무기 개발 시도·전쟁이 문제"
피폭자 경험담 대신 전할 '전승자' 육성…증언 영상 활용한 '응답장치' 개발
(히로시마=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투하 지점에서 약 1.8㎞ 거리에 있었어요. 저는 살았지만, 같은 장소에 있었던 세 살 위 누나는 죽었죠. 누가 살아남을지 누가 죽을지는 운명이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졌을 당시 6세였던 가지야 후미아키 씨는 지난 8일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기억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강렬해지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86세인 가지야 씨는 피폭 경험을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전하는 증언 활동을 지금도 활발히 하고 있다.
◇ "작은 차이가 삶과 죽음 갈라…인류 지성 합쳐야 평화 실현 가능"
가지야 씨는 원폭이 투하됐을 때 임시 교실에서 걸레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히로시마 상공에는 미군 B-29 폭격기가 거의 매일 왔고, 1945년 8월 6일에도 B-29가 날아왔다고 했다.
그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깥쪽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쩍 빛이 났다"며 "원자폭탄 투하 지점에서 반경 2㎞ 이내는 거의 궤멸했지만, 2㎞ 언저리의 건물 안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지야 씨는 "원폭이 투하됐을 때 B-29가 두세 대만 날아와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만일 사이렌이 울렸다면 많은 사람이 대피해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피폭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작은 차이가 생사를 갈랐으며, 히로시마 주민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기둥이 있는 좁은 곳에 있었던 사람은 많이 살았어요. 예를 들면 화장실이죠. 화장실에 있다가 살았다는 사연을 많이 들었어요. 현관도 생존 확률이 높은 곳이었죠. 우연이지만, 그 순간 어디 있었는가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됐어요."
가지야 씨는 운 좋게 살았지만, 누나는 건물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당시 초등학교 3∼6학년생은 히로시마 시내가 아닌 교외 지역으로 대피해 지냈는데, 그의 누나는 부모가 보고 싶어서 시내 집으로 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원폭 투하 직후 피신해야 한다는 생각에 히로시마역 북쪽 후타바산으로 향했다. 당시 그가 이동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물을 달라"였다고 했다.
가지야 씨는 후타바산에서 본 히로시마 시가지는 불타는 폐허와 다름없었다고 회고하면서 "그러한 순간을 다시는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 핵무기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보다 위력이 100배는 강하다고 알려졌다면서 또다시 핵무기가 히로시마에서 터진다면 혼슈 서부와 시코쿠섬이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히로시마가 처음, 나가사키가 두 번째였습니다. 세 번째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전쟁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전쟁이 나면 서로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하니까요."
그는 일본을 공격한 미군에 대해 "전쟁 때는 명령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어서 원한이나 억울함은 없다"며 "전쟁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일본이 원폭 피해를 봤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미국처럼 전쟁 중에 핵무기를 만들려 했다는 점을 전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지야 씨는 '핵무기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평화를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모르겠다"면서도 "인류 지성을 합쳐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피폭 증언자 87.6세 '고령화'…전승자 "누군가는 피폭 경험 이야기해야"
가지야 씨는 2020년 피폭 증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현재는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며 연간 35회 정도 대중에게 원폭의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한때는 강연 횟수가 연 70∼80회였으나, 85세 이후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줄였다고 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집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피폭자 수는 9만9천130명이다. 1980년에는 37만2천264명이었으나, 점차 줄어 처음으로 1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생존 피폭자 절반가량은 히로시마현에 거주한다. 피폭자 평균 연령은 전년보다 0.55세 높아진 86.13세였다. 피폭자 중에서도 가지야 씨처럼 공개 증언 활동을 하는 '증언자'는 극히 적다.
피폭 증언자 수 감소와 고령화에 대응해 히로시마시는 피폭자 경험을 학습해 대신 전달하는 '전승자'를 육성하고 있다. 전승자는 피폭자와 일대일로 묶여 경험담을 듣고 원고를 작성한 뒤 강연 실습을 한다. 연수 기간은 2년이다.
올해 4월 기준 히로시마 평화문화센터가 위촉한 증언자는 29명, 전승자는 239명이다. 평균 연령은 증언자가 87.6세, 전승자가 64.7세다.
히로시마시 관계자는 "전승자 연령 역시 높은 편"이라면서도 "최근 전승자 모집에 응한 사람 중에는 10대와 20대가 총 10명을 넘었다"고 말했다.
가지야 씨가 피폭 경험을 전수한 전승자 중에는 37세인 오키모토 하루키 씨도 있다. 히로시마현 출신인 그는 2023년 10월부터 전승자로 활동 중이다.
지난 8일 강연에 동석한 오키모토 씨는 "독일로 역사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만난 여성 가이드가 몇 시간 동안 안내하는 것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며 "누군가는 히로시마의 피폭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승자는 피폭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피폭자를 대신할 수 있을지가 여전히 고민"이라며 "가지야 씨가 후타바산으로 대피했을 때처럼 맨발로 거리를 걸어보기도 하고 원폭 관련 자료도 많이 수집해 공부했다"고 덧붙였다.
오키모토 씨는 "어렸을 때는 원폭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실 무섭고 싫었다"며 "이런 개인적 에피소드도 넣어 가면서 가지야 씨의 경험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피폭자 증언 응답장치 참여 할머니 "참상 미래에 남기고 싶어"
히로시마에는 피폭 증언자와 전승자뿐만 아니라 피폭 경험담을 들을 수 있는 대형 단말기인 '피폭 증언 응답장치'도 있다.
NHK 히로시마 방송국이 개발한 이 장치는 94세인 가지모토 요시코 씨가 5일간 약 900개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촬영해 만들었다. 그는 원폭 투하 당시 비행기 부품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응답장치 속 가지모토 씨가 답하는 질문은 '8월 6일 날씨는', '원폭이 떨어진 순간 무엇을 생각했나', '사망자를 봤을 때 충격을 받지 않았나' 등 원폭 투하와 관련된 것도 있고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었나' 등 시대 상황이나 개인사에 얽힌 것도 있다.
가지모토 씨가 의자에 앉아 있는 영상 장치를 향해 이 같은 질문을 하면 기존에 녹화한 답변이 나온다. 적절한 답변을 찾는 작업에는 인공지능(AI)이 활용된다.
NHK 히로시마 방송국에서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난 가지모토 씨는 응답장치 제작에 협력한 이유와 관련해 "참상을 잊어서는 안 되니까 경험을 어떻게 해서라도 미래에 남기고 싶었다"며 이 장치가 있으면 몇 년이 흘러도 원폭을 모르는 사람에게 경험이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NHK 관계자는 "AI는 어디까지는 답을 검색하는 일에만 활용한다"며 생성형 AI에 가지모토 씨의 답변을 학습시켜 새로운 답을 내놓도록 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질문은 젊은 세대가 알고 싶어 하는 내용, 가지모토 씨가 후대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며 장치에 대한 내용 검증은 가지모토 씨의 경험을 공유하는 전승자에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NHK 히로시마 방송국은 이 장치를 각지에 대여해 활용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히로시마시도 피폭자 5명의 증언 모습을 촬영한 장치를 만들어 올여름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히로시마에서는 원폭 투하 전후 흑백사진을 컬러사진으로 변환해 옛 풍경을 전하는 '기억의 해동'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컬러사진 일부는 동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