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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타며 96억 빚졌다"…中서 '채무 인플루언서' 뜨는 이유[세계한잔]

중앙일보

2025.07.12 15:00 2025.07.1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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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사전 > 세계한잔

※[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유튜브에서 '负债人 Vlog(채무자 브이로그)'라고 검색하면 볼 수 있는 한 '채무 인플루언서'의 영상. 40세의 남성이 자신은 벤틀리를 타고 다니고 있으며 700만 달러(약 96억원)의 빚이 있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나는 벤틀리를 타며 700만 달러(약 96억원)의 빚을 졌다."
중국에선 자신이 가진 빚을 콘텐트화해서 수익을 내는 이른바 '채무 인플루언서'가 뜨고 있다. '파산 브이로그' '채권 추심 전화 받아본 후기' 등의 콘텐트를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관심을 유도하고 돈을 버는 방식이다.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따르면 사상 최악이라는 중국 불경기 속에서 빚더미에 앉은 청년들이 이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숏폼 플랫폼 '도우인'에서 '负债人 Vlog(채무자 브이로그)'라고 검색하면 볼 수 있는 한 '채무 인플루언서'의 영상. '빚에 허덕이는 90년대생이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이라는 내용이다. 사진 도우인 캡처


대부분 실패하고 상환 협박 시달려

중국의 채무자 실상은 심각하다. 중국경제 분석 업체인 가베칼 드래고노믹스는 현재 중국에서 2500만~3400만 명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진 것으로 추산했다. "5년 전보다 두 배나 높고, 높은 청년 실업률과 경기 침체 속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다. 이와 관련, 이코노미스트는 "고용난과 실업 문제도 있지만, 청년들 가운데는 무리한 대출과 과소비로 빚이 불어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빚에 허덕이는 중국 청년층에서 삐뚤어진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이른바 채무 인플루언서로 돈을 벌어 빚을 갚는 것이다. 실제 중국의 유명 숏폼 동영상플랫폼인 도우인 등에 '채무자 브이로그'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빚에 허덕이는 1990년대생이 아르바이트하는 모습' '빚에 시달리며 깨달은 점' '벤틀리를 몰고 다니는 40세 남성이 700만 달러(약 96억원)의 빚을 지게 된 이유' 등의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중 상당수는 게시물에서 비현실적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빚을 졌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채무 인플루언서로 주목받기 위한 과장이라고 한다. 최근 채무 인플루언서로 데뷔한 상하이의 직장인 릴리(가명)는 "인기 있는 채무 인플루언서의 경우, 팔로워가 수십 만 명에 달한다"며 "어떤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빚이 1000만 위안(약 19억원)이다' '나는 빚이 1억 위안(약 191억원)이다'고 채무액을 눈덩이처럼 부풀린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채무 인플루언서로 성공하지 못한 채 온라인 대출업체로부터 채무 상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채권 추심원들은 부모, 친척, 친구들에게 연락해 돈을 갚으라고 괴롭히는 이른바 '접촉 폭격'을 한다"며 "일부는 이로 인해 우울증에 걸리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6월 1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앞.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AP=연합뉴스
지난해 중국 당국은 채권 추심 업체들이 폭력 위협을 하거나 욕설을 사용하는 것 등을 금지하고 대출기관에 개인정보 보호(연락처 오용 금지)를 당부했다. 하지만 중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이 느슨한 데다 정부의 채권 추심 업체 규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무자들이 모인 SNS 단체인 '채무자 연합' 측은 "채권 추심 업체들의 위협적이고 침해적인 행동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하수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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