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번호이동 최대 200만원 지원"…고객뺏기 전면전 시작됐다 [팩플]

중앙일보

2025.07.12 22:00 2025.07.13 01:0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지난 10일 서울 시내 한 통신사 판매점 출입문에는 ‘번호이동 최대 200만원 지원’이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같은 날 경기도의 한 매장엔 “인터넷+TV+핸드폰 동시 가입시 현금 최대 100만원에 TV, 무선청소기, 에어컨 택 증정”이란 현수막이 걸렸다. 일부 KT 대리점에서는 SK텔레콤(SKT) 이용자들에게 ‘나중엔 내 인생이 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로 번호이동을 권유하라는 내용이 담긴 ‘고객 대응 대본’이 배포되기도 했다.

SK텔레콤이 해킹 사태 발생 이후 번호 이동하는 가입자의 위약금을 면제하기로 지난 4일 결정한 이후 번호이동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신 판매점들은 위약금 면제 관련 홍보 문구를 적극 내걸고 고객들을 모으는 중이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매장에 붙은 관련 안내문의 모습. 연합뉴스

1위 통신 사업자인 SKT가 해킹 사태 책임 차원에서 오는 14일까지 가입 해지 고객들의 위약금을 면제해주기로 하면서, 통신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2014년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이후 오랜 기간 대대적인 불법 보조금 지원이나 노골적인 비방은 줄어들고, 일부 ‘성지’(다른 곳보다 보조금을 더 얹어주는 매장)를 통한 경쟁만 암암리에 이뤄져왔지만 SKT 해킹 사태를 계기로 다시 전면전으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SKT 위약금 면제가 시작된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누적 12만4414명이 SKT를 떠났다. 토요일인 12일에는 하루 만에 2만7931명이 이탈했다. SKT 해킹 사태 이전까지 일일 번호이동자 수가 1만명 가량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한 통신 대리점 관계자는 “100만원이니 200만원이니 하는 보조금 액수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가 안된다. 해킹 사태로 경쟁 판이 깔리니 예전처럼 무책임한 마케팅이 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열 경쟁 양상을 보이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7일 SKT·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마케팅 담당 임원들을 불러 지나친 경쟁을 자제해 줄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한번 달궈진 현장 분위기는 식지 않고 있다. 또 14일 이후 SKT 위약금 면제가 종료된 이후에도, 한동안 치열한 고객 뺏기 경쟁이 이어질거란 전망도 나온다. 오는 22일부터 단통법이 폐지되면서, 보조금 상한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15일부터는 삼성전자의 신제품 갤럭시 Z 폴드7, Z 플립 7의 사전판매도 시작된다. 단통법이 시행 중이던 시기에도 갤럭시나 아이폰 신제품이 출시되면 ‘번호이동 전쟁’이 한층 치열해졌는데, 이번엔 SKT 해킹 사태에 단통법 폐지까지 맞물리게 된 것.


통신 업계 관계자는 “단통법 시기 경쟁을 억눌렀고 3사의 점유율 구도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1위 사업자가 위기에 빠지고 때마침 단통법도 사라지니, 추격자들에게 큰 기회가 생긴 건 분명하다”며 “전례 없는 경쟁이 펼쳐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도 10일 통신 시장 전망 리포트를 통해 “제1의 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업권 내 가장 큰 영향력과 자금력을 보유한 선두사업자가 경쟁사들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게 돼, 상호 협조적 균형을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서울에 있는 한 통신 판매점의 모습. SK텔레콤 위약금 면제 소식과 함께, 번호 이동시 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홍보 문구가 붙어있다. 독자 제공

통신사 간 경쟁 과열이 휴대전화 구입을 앞둔 소비자 입장에선 반길만한 일일 수도 있지만, 과거 발생했던 부작용들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허위·과장 광고가 늘거나, 보조금을 미끼로 비싼 요금제를 강제해 실제로는 별로 이익이 되지 않는 ‘편법 판매’가 이뤄질 수 있어서다. 또 단통법 시행의 주요 이유 중 하나였던, 정보 격차로 인한 일부 소비자의 상대적 손해가 커질 수도 있고 과도한 마케팅비 투입으로 인한 장기적 가격 인상이나 서비스 품질 저하 위험도 있다.


경기 지역의 한 대리점주는 “통신사들이 마냥 손해 보는 일을 할리는 없다. 보조금이나 사은품을 늘리는 방식의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면 통신사들은 다른 방법으로 이익을 얻으려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라며 “너무 과한 경쟁은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도, 대리점 등 소상공인들에게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윤정민([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