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방북 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원산에서 만났다. 양국 간 주요 현안인 북한군 추가 파병과 함께 군사기술 지원, 에너지 협력, 관광 문제를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이 전날 라브로프 장관을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조로(북·러) 두 나라는 동맹관계 수준에 부합되게 모든 전략적 문제들에 대하여 견해를 함께 하고 있다"며 "이는 조로 두 나라 사이에 구축된 높은 전략적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북한이 라브로프 장관 일행을 새로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로 초청한 것은 러시아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TV는 이날 김정은이 요트에서 라브로프 장관을 접견하는 장면을 송출하기도 했다.
이어 김정은은 라브로프 장관과 최선희 외무상이 면담에 앞서 진행한 제2차 전략대화 결과를 청취한 뒤 "두 나라의 조정 조화된 외교적 입장이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 긍정적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원적 해결과 관련하여 러시아 지도부가 취하는 모든 조치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 성원할 용의를 다시금 확언"했다.
신문은 양국이 김정은의 방러 일정 조율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김정은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까운 시일 내에 당신과 직접 접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러시아 측의 이런 언급은 사실상 김정은의 방러와 김정은-푸틴 간 정상회담 조율이 상당 수준 마무리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크렘린궁은 이와 관련해 지난 9일 김정은의 방러나 푸틴의 방북이 가까운 시일 내에는 계획된 바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을 통해 12일 원산에서 양국 외교 수장 간 '제2차 전략대화' 공보문을 하루 만에 공개했다. 양측은 지난해 6월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신조약)에 근거해 "국제무대들에서 호상 협력을 강화하면서 국가 주권과 영토 완정, 국제적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과 협조를 더욱 심화시켜나갈 입장을 다시금 피력"했다.
공보문에 따르면 러시아 측은 "조선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현 지위를 부정하려는 임의의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하며 국가의 안전과 주권적 권리를 수호하려는 조선 측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확고부동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에 북한은 "우크라이나 분쟁의 근원을 제거하고 국가의 자주권과 안전이익, 영토완정을 수호해나가기 위한 러시아 정부의 모든 조치들에 대한 전적인 공감과 지지를 표시"했다.
이를 두고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하길 원하는 북·러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향후 북·미는 물론 남북 관계에서도 북한의 뒷배 역할을 자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 외무부는 1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북·러) 양측은 한반도 긴장 고조의 배경에 미국과 동맹국이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 훈련을 점점 더 자주 실시한 결과라는 점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반도 긴장의 원인을 한·미에 돌리고 북한을 감싸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한편 북·러 양국은 2026~2027년 교류 계획서를 체결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개하지 않은 의제 가운데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10월10일), 제9차 당대회(연말 예상)와 같은 북한 내 주요 행사를 계기로 한 고위급 교류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공보문에서 "북·러 외무상들은 상급 전략대화를 비롯하여 두 나라 대외정책 기관들 사이의 의견 교환을 여러 급에서 계속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접견은) 외형상 제2차 전략대화지만 실제는 라브로프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북·러 정상대화"라며 "공병 6000명 등 북한군 추가 파병의 구체적 일정과 첨단 무기 기술 및 에너지 협조 문제, 관광 문제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