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 동맹국을 비롯한 전세계 국가들을 향한 무차별적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고마워하지 않았던 다른 나라들이 이제 미국을 고마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핵심 동맹인 유럽연합(EU)과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이 체결된 멕시코에 나란히 3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서한을 발송했다. 지금까지 관세 통보를 받은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25개국(24개국+EU)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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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협상’ EU에 10%P 더한 30% 관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을 수취인으로 한 서한을 공개하고 다음달 1일부터 각각 3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EU에 부과된 30%의 관세는 지난 4월 발표됐던 20%보다 10%포인트 높다. 최근까지 벌여온 막판 조율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유럽의 핵심 동맹국으로 구성된 EU는 미국의 최대 교역 상대로, 지난해 교역액은 9759억달러(약 1346조원)에 달한다.
4월 상호관세 발표 대상에서 빠졌던 멕시코도 캐나다(35%)에 이어 30%의 관세를 부과 받았다. 멕시코는 지난해 미국과 8400억달러(약 1158조원)를 교역하며 단일국가 기준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마약 반입을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책정했다가 USMCA 적용 품목은 관세를 면제했다. 30%의 관세는 기존의 ‘마약관세’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멕시코 수출품의 87% 가량이 USMCA 적용을 받기 때문에 13% 교역에 해당하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상향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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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에 빠진 EU…“필요하면 대응 조치”
막판 합의을 기대했던 EU는 충격 속에 추가 협의를 요청하는 한편, 협상 결렬에 대비한 맞대응 전략을 동시에 검토하기 시작했다.
EU 측 협상 수석대표인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9일 “다른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으로 더 높은 관세에 직면했지만, 우리의 협상은 더 높은 관세 부과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했다”며 “조만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 발송이 이뤄지자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성명을 내고 “30% 관세는 필수적인 대서양 공급망을 교란해 양쪽 모두의 기업·소비자·환자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며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해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필요하다면 비례적 대응조치 채택을 포함해 EU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며 협상 결렬시 대미 보복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집행위와 EU 대사들은 13일 긴급회의를 통해 대응 전략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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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군사면에서 미국을 이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자신의 며느리 라라 트럼프가 진행하는 폭스뉴스의 ‘마이 뷰 위드 라라 트럼프(My View with Lara Trump)’ 인터뷰에서 관세 전쟁과 동맹국에 대한 국방지출 증액 요구 등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라라는 차남 에릭의 배우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협상에 대해 “각국이 우리와 거래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나라에 절대 고마워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특히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상향하기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국가들의 국방지출 합의와 관련해선 “나는 그 문제를 해결했고, 각국이 실질적으로 더 많은 돈을 내고 있다”며 “그들은 무역과 군사 면에서 우리나라를 이용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집권 1기의 경험이 현재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경험은 삶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재능이 경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그 둘을 다 가진다면 매우 좋은 일일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맹국에 대한 압박이 자신의 재능과 경험에 바탕한 결과물임을 과시한 말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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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배려’ 없는 무역판도 뒤흔들기
전세계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정책은 전세계의 무역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동맹에 대한 배려마저 사라졌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 테크기업을 상대로 한 ‘디지털세’ 부과를 철회하는 등 입법 사안까지 양보하는 굴욕에 가까운 성의를 보였지만 일방적 관세 통보를 받았다. 오는 20일 선거를 앞두고 기존(24%)보다 1%포인트 높아진 25%의 관세를 통보받는 일본에서도 “동맹에 대한 예의 없는 행위로 인한 강한 분노를 느낀다”는 반응이 노출되고 있다.
한국 역시 국가안보실장과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상을 위해 미국을 긴급 방문한 상태에서 느닷없는 기습 통보의 대상이 됐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윌리엄 라인시 연구위원은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공개적이고 가시적 승리”라며 “무엇을 얻어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피해만 입으면서 어떻게 트럼프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채드 바운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태도와 관련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내 정치세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문제는 몇 주 만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