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전자 광고판을 철거한 뒤 안전 조치를 따로 해두지 않아 발생한 사망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서울시와 시설관리업체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12단독 김혜령 판사는 “서울시와 시설관리업체 D사가 사망한 노모(당시 59세)씨의 자녀 두 명에게 각 1억 432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난달 9일 판결했다.
노씨는 2023년 12월 6일 오후 8시29분쯤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사고를 당했다. 원래 홍대입구 버스전용차로 정류소에는 가로 2.5m 세로 1.7m 크기의 전자 광고판이 15m에 걸쳐 줄이어 설치돼 있었다. 그런데 사고 한 달 전인 2023년 11월 D사는 협약 만료에 따라 서울시의 철거 요청을 4차례 받고 전자 광고판을 철거했다. 빈 곳은 테이프를 X자로 붙여놓았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노씨는 버스가 도착해 인파가 몰리자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뒷걸음질쳤다. 광고판이 철거된 자리의 무릎 높이쯤 틀에 걸린 노씨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도로에 머리를 부딪쳤다.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13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가 같은 달 19일 사망했다.
법원은 서울시에 대해 국가배상법 5조 1항에 따른 영조물 설치·관리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시설물이 하자 있는 채로 사고가 발생하기 약 한 달 전까지 방치돼 있었다”며 “사고 직전인 12월 4일 시 담당 공무원에게 '시설물이 파손된 지 1개월 이상인데 안전사고 위험이 있으니 조속히 조치 바란다'는 민원이 전달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D사에 대해서는 전자 광고판을 철거한 자리에 테이프만 둘러 하자 있는 상태로 방치한 책임을 물었다. 법원은 “D사가 공작물 중 무릎 높이의 철제 틀만 남기고 가운데를 비워 놓아 버스정류소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틀에 걸리는 등 그 너머 반대편 도로로 넘어질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협약 만료에 따라 전자 광고판을 철거한 뒤 서울시에 통보했으므로 유지·관리 책임이 없다는 D사의 주장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와 D사는 항소를 제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을 대리한 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웅빈)는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계약관계에 있는 민간 기업도 공공시설물 안전 확보 책임이 있다는 게 재차 확인된 판결”이라며 “유사 사고 예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당시 시설물 관리를 담당한 서울시 공무원 2명도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홍다선 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서울시 공무원 40대 김모씨와 20대 최모씨에게 각각 벌금 1500만원,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유족들이 비통한 심정을 호소하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면서도 “사고 이후 서울시에서 시내버스 정류소 유지관리업체 미선정에 대비한 안전관리 예산을 새로 편성하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