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맹국인 이란을 상대로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과 핵 합의를 할 것을 요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란은 농축 우라늄을 포기할 뜻이 없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12일(현지시간) 미 악시오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이란에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우라늄 '농축 제로(zero enrichment)'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최근 이란 측에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 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입장을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밝혔고, 최근 이스라엘 정부에도 알렸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악시오스는 또 "러시아는 이란이 핵 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없애는 대신, 원자력발전을 위한 3.67% 농축 우라늄을 제공하고 이란의 연구용 원자로와 핵 동위원소 생산을 위해 20% 농축 우라늄도 소량 공급해주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란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이란 주재 외교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 새로 핵 협상을 하는 문제에 대해 "협상 해결안은 반드시 농축 권리를 포함해 이란 국민의 핵 문제 관련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 이스라엘에 더해 핵심 동맹국으로 꼽혀왔던 러시아까지 우라늄 농축 제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셈이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핵 문제 해결을 두고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의 셈법이 서로 달라 충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선 이란은 외교적 해결에 열려 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도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외교적 해법의 전제 조건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군사 공격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선호하나, 필요할 경우 군사 조치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WSJ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났을 때 처음에는 이란에 대해 미국이 추가 폭격을 하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사석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만약 이란이 다시 핵무기를 향해 움직인다면 이스라엘은 추가로 군사적 타격을 실행할 것"이라고 하자 여기에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WSJ가 전했다.
이스라엘은 외교적 해법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스라엘의 한 고위 관리는 "지난달 타격당한 나탄즈, 이스파한, 포르도 등 이란 핵 시설 세 곳 중, 이스파한의 농축우라늄 비축분 중 일부는 이란 측이 상당한 노력을 할 경우 회수가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WSJ에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위협을 무력을 통해서라도 당장 제거해야 할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고위 관리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할 때 반드시 미국의 명시적인 승인을 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란이 핵 협상 타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무시할 수는 없고, 특히 이란은 재차 군사적 공격을 받게 되면 하메네이 정권의 존립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 외교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WSJ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