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반도체 자립에 자신감을 얻은 중국의 역공일까. 미국 제재로 인공지능(AI) 칩의 ‘자급자족’에 매진했던 중국이 적극적인 수출 행보에 나선다. 한때 기술 유출을 우려해 중국 인접국에 엔비디아 AI 칩 판매를 주저한 미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10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화웨이가 구형 AI 칩 ‘어센드 910B’를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등에 팔기 위해 현지 고객사와 접촉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2023년 출시한 910B 칩은 딥시크의 AI 모델 훈련에도 사용하는 등 중국의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 제품이다. 화웨이가 자체 설계하고 생산은 중국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SMIC가 맡았다.
올해 양산을 시작한 최신 AI 칩 ‘어센드 910C’도 우회 수출을 시도 중이다. 화웨이는 해외 고객들에게 910C로 구축한 중국 내 AI 서버 시스템에 원격 접속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910C는 중국에서도 수요가 많다. 수출 물량 확보가 어려운 만큼 클라우드 방식으로 고객 유치에 활용하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종 계약으로 성사된 사례는 아직 없다. 하지만 외신들은 화웨이의 공격적인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화웨이가 해외 AI 시장에서 자사의 기술력을 선보이기를 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재 속 AI 칩 자립을 이뤄낸 화웨이가 이제 미국이 장악한 AI 칩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미·중 기술 패권 다툼이 시장 주도권 경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주목된다. 화웨이가 접촉 중인 UAE와 사우디는 최근 AI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해 미국이 핵심 시장으로 공략하는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중동을 방문해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1만8000개 공급 등 대규모 계약을 잇따라 체결했다.
당시 미 정치권에선 중동으로 수출된 엔비디아 AI 칩이 중국으로 밀수돼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제는 중동 시장에 중국산 AI 칩이 유통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화웨이가 가격 경쟁력 등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할 경우 미국과 정면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 5월 화웨이의 어센드 칩을 사용하는 국가는 미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차별적 제재를 가하는 국가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기감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로이터는 11일 미 상원의원들이 18일 중국 방문을 예정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에게 미국의 수출 규제를 약화할 수 있는 접촉을 자제하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황 CEO는 리창 국무원 총리와 면담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