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17)은 지난해 친한 친구와 크게 다툰 뒤 학교에서 급식을 혼자 먹는 등 혼자 생활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이듬해 고3을 앞두고 대학 진학 관련 고민도 많지만, 부모님과는 어릴 적부터 깊은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A양은 “함께 상의하거나 힘들다고 털어놓을 대상이 하나도 없어 혼자 속으로 곪아가는 느낌”이라며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령기 아동·청소년의 정신 건강 지표가 악화하고 있지만 전문 상담교사 등 도움 받을 곳이 없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기 성남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B양(15)도 부모로부터 성적 관련 압박 받을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 못했다. B양은 “위클래스(Wee 클래스·교내 상담센터) 선생님이 한 명 뿐인데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거라 생각하니 친밀감을 쌓기가 어렵다”며 “시험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안 좋은 생각이 들어도 찾아가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0일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5세~19세 아동·청소년 중 24만800명이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나 우울증을 진단·치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아동·청소년의 3.7%로, 27명 중 1명인 셈이다. 지난 2017년(8만 800여명)에 비해 8년 사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좋은교사운동은 “WEE 프로젝트 체계가 있지만 전문 상담교사 배치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정서·행동 특성검사 결과 2차 기관에 연계되지 않은 비율도 27%가 넘는다”며 “학생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조기 개입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중등교육법 19조의2항 등에 따르면 학교는 교내에 전문 상담교사나 전문 상담순회교사를 배치해야 하지만, 지난해 기준 전문 상담교사가 ‘0명’인 학교는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특수학교 1만 2119곳 중 전문 상담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5043곳으로, 전체의 41.6%로 나타났다. 전문 상담순회교사를 포함해도 배치율은 48.4%에 불과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살 위험군에 속하는 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실이 교육부와 전국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자살한 초·중·고등학생 수는 214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8일 이재명 정부의 ‘8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아동 마음 건강 지원을 위한 전문 상담교사 배치 법정 기준’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상담교사 충원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지역사회 상담 센터에 연계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학교에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에 대한 교육 등을 통해 예방책을 같이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