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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익충의 습격

중앙일보

2025.07.13 08:02 2025.07.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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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환희 IT산업부 기자
‘그것들’을 처음 대면한 것은 약 3년 전이었던 것 같다. 낙하산을 타고 풍경을 즐기는 듯 유유히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것들은 언뜻 보기에도 이상했다. 약오를 정도로 잽싼 모기나 파리 같지도 않고, 무언가를 탐색 중인 벌이나 나비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느린 비행 속도 덕에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딱히 벌레를 안 무서워하는 편인데도 길 한복판에서 ‘으악!’ 소리를 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벌레 두 마리가 꼬리를 맞댄 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러브버그로 뒤덮인 인천시 계양산의 모습. [연합뉴스]
붉은등우단털파리, 별칭 ‘러브버그’로 익숙한 벌레들은 그 후 여름철마다 찾아왔다. 눈에 띌 때마다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러브버그가 익충(益蟲)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독성도 없고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는 것. 유충(알에서 갓 깬 애벌레) 단계에선 오히려 땅속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올여름, 수도권은 익충의 왕국이 됐다.

많아야 대여섯 마리가 보이던 러브버그가 올해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떼로 나타났다. 러브버그로 뒤덮여 검은색 등산로가 되어버린 인천 계양산의 충격적인 모습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와 뉴스를 타고 퍼졌다. 시민들의 일상을 흔들어 놓은 정도에 비해 지자체 등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는데, 익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인천의 한 구청장은 “방제 작업을 해서 (러브버그를) 전멸시켰다면 환경 단체에서 엄청난 항의가 들어왔을 것”이라면서 “국민이 좀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익충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곤충’이다. 그런데 익충으로 분류된다고 해서 매년 개체 수가 급증하는 러브버그가 초래한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거나 아예 불편함이 없다고 강변할 수 있을까. 행인들에 무작정 달라붙고, 자동차 유리에 붙어 안전을 위협하며, 사체들이 검은 덩어리로 쌓여 악취를 풍기는데도 말이다. 2021년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이러한 분류의 허상을 지적한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생 수천 종의 물고기를 분류했지만, 그런 분류가 자연을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를 좁히는 인위적인 프레임(틀)으로 작용했다. 익충이라는 분류 안에서 일상적·사회적 불편을 외면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7월 중순 러브버그는 사라지고 있지만, 내년 여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은 높다.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화학적 방제를 하는 것도, 익충이니 무작정 손을 놓고 있는 것도 모두 정답은 아닐 테다. 러브버그가 중국에서 국내로 유입된 2015년부터, 수도권에서 개체 수가 급증한 2022년부터라도 친환경 방제법을 연구하고 대발생 예측을 하는 중장기 관리체계 마련에 나섰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대벌레 등 곤충 대발생 다음 주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환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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