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의 크로아티아에는 두브로브니크같이 아름다운 중세도시들이 점점이 위치한다. 높고 두꺼운 성벽으로 감싼 성안에 좁은 골목을 사이로 4~5층의 붉은 기와집이 밀집한 모습이다. 그중 하나, 달마티아의 스플리트는 고대 로마 궁전이 변화해 도시로 발전한 희귀 사례다.
디오클레티아누스(242~311)는 21년의 제위 후 305년 퇴위를 선언하며 스팔라툼(현 스플리트)에 거대한 별궁을 짓고 은거를 시작했다. 그는 20명의 황제가 암살 교체된 이른바 3세기의 위기를 종식한 군주로 인기가 높았다. 달마티아 하층민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며 로마 유일의 자진 퇴위한 황제였다. 거듭된 복위 요청도 거절하고 이 별궁에서 채소를 가꾸며 여생을 보냈다.
정사각형 성곽을 두르고 중심 도로를 십자형으로 교차해 성안을 4구역으로 나누었다. 남북로인 카르도는 군사용, 동서로 데쿠마누스는 상업용 도로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제국 유통망의 핵심이었다. 로마가 유럽 곳곳에 건설한 계획도시의 일반적인 형식이나, 스플리트는 성안을 도시가 아니라 궁전으로 가득 채웠다.
바다에 면한 남쪽 성문은 해상교통, 동서북 3개의 성문은 육상교통의 관문이었다. 성안 북쪽엔 군사와 행정시설이, 남쪽엔 황제의 궁전시설이 밀집했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궁전은 파괴되고 도로는 좁아졌으며 민가로 가득한 중세도시가 되었다. 궁전 중심에 있던 열주 광장, 팔각형 건물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영묘, 그리고 주피터 신전만 남아 창건 당시의 뼈대를 보여준다.
15세기 베네치아가 이곳을 식민화하면서 성 바깥으로 신도시를 확장했다. 시민광장과 시청사는 중세 베네치아 형식이다. 19세기 여기를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국립극장과 같은 신고전주의 건물들을 건설했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같이 변하면서도 과거의 흔적을 적층해 여러 시간의 기억을 소환한다. 리바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17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