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포괄적 관세는 중국뿐만 아니라 중국 이외 지역, 특히 동남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제3국을 경유한 우회 수출품에도 고율의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한 조치의 실행에서 가장 큰 쟁점은 미국 당국이 ‘중국산’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지금까지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탓에, 실질적으로 중국 외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들까지 제재 대상이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 입장에서는 경유지나 공급망 구성 방식이 실제 관세 부담에 큰 차이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 본토에서 직접 선적하든,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에 따라 동남아 국가에서 부분 조립된 제품을 우회 운송하든, 결국 비슷한 수준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지 결정은 점점 더 물류 경로보다는 노동비용·기술력·규제환경과 같은 근본적인 경쟁 요소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의 대응도 주목된다. 현재 중국은 미국 소비재 수요의 약 19%를 공급하고 있으며, 자국 내 생산을 더욱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는 단순한 공급망 조정보다는 수직적 통합과 전략적 자립을 꾀하는 산업 전략의 일환으로 읽힌다. 중국은 또한 희토류 광물과 같은 전략적 자원을 무기화해, 미국의 관세 압박을 우회하려는 움직임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중 산업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관세 정책에는 일정 부분 출구 전략도 담겨 있다. 일부 조항은 해당 국가가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거나 조립할 경우, 관세를 면제해줄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일부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미 국내 투자를 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25%의 고율 관세를 피하지 못한 사례는 그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러한 조치들이 보호무역주의의 흐름을 되돌리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제약, 대형 트럭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브릭스(BRICS)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관세 위협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논의되었던 100% 고율 관세보다는 다소 완화되었지만, 이들 국가의 ‘반미 성향’을 문제 삼은 제재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제 기업과 국가들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히 관세율의 높고 낮음이 아니다. 생산지 선택의 문제를 넘어, 어느 경제·정치 블록에 속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