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영산재를 주관하는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를 뒷마당처럼 드나들었다. 또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장로교회에서 예배도 드렸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이슬람·힌두교·유대교·불교가 공존하는 토론토가 편하게 느껴진다. 다문화·다종교적 경험이 내 학문의 정체성을 빚어냈다. 고대 그리스 고고학자이자 간다라 미술 연구자, 로버트 호 불교학센터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주 호센터와 토론토 대학 뉴 칼리지가 공동 주최하여 티베트 불교 고승 종사르 켄체 린포체(사진)를 초청, ‘AI 시대의 정신건강’을 주제로 공개 대담을 열었다. 켄체 린포체는 부탄 출신 영화감독이자 작가·교육자·자선가로 활동한다. 영화 애호가라면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라: 축복’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달라이 라마에 비견되는 영향력을 지닌 스승으로 알려져 있고, 기술 변화에 민감한 진보적인 사상가이기도 하다.
정신 건강이 육체적 건강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린포체의 말에 나는 그 분야에 뒤처진 한국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한 인공지능(AI) 기술을 변화하는 시대의 필연적인 일부로 보고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AI가 불교적 시각에서 좋은 소식이라며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질문,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고 했다.
린포체 특유의 유머 또한 빛났다. 한 청중이 “챗GPT가 대신 반야심경을 읊어주면 공덕이 쌓일까요?”라고 묻자 그는 “컴퓨터를 켜고 질문을 입력하는 노력을 했으니, 아주 조금은 쌓이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그의 메시지는 명료했다. 행복과 정신건강은 본래 우리 안에 있다. 진정한 가르침은 선한 마음과 바른 의도를 가진 인간 스승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성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한, AI 기술도 우리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