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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수의 이코노믹스] 늘어나는 가계빚, 규모보다 흐름이 문제다

중앙일보

2025.07.13 08:20 2025.07.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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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조원 육박하며 사상 최대치 기록한 가계부채
이윤수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
가계부채를 둘러싼 질문은 늘 공포로 시작된다. 2013년 1000조원을 넘어섰던 가계부채는 지난 10여년간 두 배 가까이 늘어 올해 1분기에는 1928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90%에 달하는 규모다. 모두가 ‘빚’이라고 부르는 가계부채는 누군가에겐 ‘내 집 마련의 꿈’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의 6억원 이상 대출 규제는, 시장에 막막함과 혼란을 안겼다. 이 상반된 시선 속에서 우리는 왜 늘 공포에만 갇혀 있을까. 빚의 크기만으로 문제를 진단하는 낡은 방식으로는 결코 진정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신용등급 높은 차주 주담대 증가
금융 불안정 이어질 가능성 낮아

가계·기업 신용의 부동산 집중은
한국 금융시스템 위협하는 뇌관

혁신 기업·스타트업에 자본 가게
담보 대출·총량 규제 관행 바꿔야

가계부채는 흔히 ‘빚’으로만 인식되지만, 주택이라는 필수재를 마련하기 위해 가계가 이용하는 금융서비스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집값이 높고 저축만으로는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대출을 활용해 주택 구입 비용을 분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가계부채 증가율은 부동산 시장과 밀접하게 움직인다. 특히 2015~2017년 3년간 가계부채는 매년 10% 안팎의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과 2021년에도 연간 6~8%의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시기는 서울과 전국 아파트 거래량이 모두 큰 폭으로 증가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가계부채가 주택구입 수요에 비례함을 보여준다.

특히 지난 10년간 부동산 가격 상승은 가계부채 증가를 가속화하는 구조적 연결고리를 형성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13년 말 약 4억6700만원에서 2021년 말 10억80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중위가격도 2억4900만원에서 5억2100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뛰는 동안 소득과 저축이 두 배로 늘지 않았다면, 주택을 구매하려는 가계의 수가 변하지 않더라도 대출 규모는 늘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도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부동산 문제와 분리해 논의하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을 보여주며, 대출을 억제해 부동산을 안정시키려는 정책은 결국 주거 수요와 금융서비스를 인위적으로 억제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정책적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다.

가계부채 키운 정부의 정책금융
가계부채 증가의 배경에는 금융회사의 수익성 중심 경영전략 전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자율과 연체율을 감안할 때 가계대출은 기업대출보다 매력적인 상품이다.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는 단순히 이자만 따지지 않는다. ‘위험가중자산(risk-weighted assets)’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바젤3(Basel Ⅲ) 자기자본비율 규제 등 국제 기준에서는 위험이 큰 대출에는 은행이 자기자본을 더 쌓도록 의무화한다. 위험이 크면 은행도 ‘보험금’을 더 쌓아두라는 것이다.

박경민 기자
문제는 이 규제가 기업대출과 집을 담보로 한 대출에 전혀 다른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같은 10억원을 빌려줄 때, 신용등급이 없는 일반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는 100%여서 10억원 전액을 위험자산으로 계산한다. 반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50% 이하인 아파트 담보 대출 시 위험자산은 위험가중치 20%만 적용된다. 같은 10억원이라도 위험자산으로 잡히는 금액은 2억원에 불과한 셈이다. 즉, 집을 담보로 잡으면 은행 입장에서는 자기자본을 적게 묶고도 같은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지금의 규제 설계가 은행에 ‘기업 아닌 집에 돈을 빌려주라’고 등을 떠민 셈이다. 금융회사의 가계대출 집중은 가계부채 확대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대 요인이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금융도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겼다. 특히 서민의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확대된 전세보증은 전세대출 증가의 핵심 동인으로 지적된다. 지난 5년간 100조원 이상 증가한 전세대출이 주담대의 우회경로로 활용되며 부채 증가와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정책대출의 상당 부분이 정부 보증으로 제공되면서 대출 심사 기준이 느슨해지고, 결과적으로 가계대출 규모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가계부채와 흔히 연관되는 단어는 ‘금융 위기’와 ‘한국경제의 뇌관’이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총량 증가 자체를 곧바로 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금융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대불황(Great Recession)을 초래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많은 사람은 ‘부채의 증가가 곧 금융 위기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대출이 증가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위기를 뜻하진 않았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단순히 부채의 양이 늘어났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대출의 질이 현저히 악화한 데에 있었다. 저신용자 대상의 서브프라임 대출뿐만 아니라, 프라임 주택담보대출에서도 LTV가 90%를 넘는 대출이 20%에 이를 정도로 부실 위험이 확대됐다.

기업 대출도 부동산·건설업에 집중
반면 한국의 대출 증가기는 사정이 달랐다. 2015년 대출 확장기와 코로나19 이전 대출 확장기의 대출자 특성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대출이 늘어난 시기에 오히려 신용등급이 높은 차주와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의 대출 비중이 상승해 대출의 건전성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금리 상승기 이전까지 연체율이 꾸준히 감소한 것은, 가계부채의 총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금융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환 능력이 양호한 고소득 차주의 비중이 크고 LTV 비율이 낮은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가계부채가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위험은 제한적으로 보인다.

박경민 기자
그렇다면 진짜 위험은 어디에 있을까. 금융의 본질은 단순히 ‘얼마나 빌렸나’가 아니라, ‘돈이 어디로 흐르고 있느냐’에 있다. 한국의 가계 부동산 대출 비중은 이미 주요국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대출조차 부동산업과 건설업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잔액은 2681조원으로, 2019년 이후 연평균 7.9%씩 증가해 왔다. 한국은행 자료에서도 부동산 신용은 지난 10년간 매년 평균 100조5000억원씩 늘어나, 2013년 말 대비 2.3배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가계부채 비율이 최근 소폭 하락했음에도 부동산 관련 기업부채 비율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력·사업성 평가한 대출은 미미
가계든 기업이든, 한국의 민간신용 절반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는 금융이 생산적 부문으로 흐르지 못하고, 부동산 담보대출에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부동산 신용 집중은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금융 자원이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부문에 묶이면, 자본의 효율적 활용이 떨어져 성장동력이 떨어진다. 국제결제은행(BIS) 연구에 따르면 민간신용이 부동산·건설업에 쏠릴수록 생산성 상승률이 둔화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민간신용은 이미 성장 효과가 감소하는 임계치를 넘어섰다. 부동산 중심의 금융구조는 신용의 GDP 성장 기여도를 낮추며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셈이다.

또한 과도한 가계부채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낳는다.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수록 가처분소득은 줄어든다. 중산층이 대출 이자와 교육비에 허덕이면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시장의 활력도 떨어진다. 저축이나 미래 준비는 요원해지고, 금리 상승은 부채 부담을 키워 경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부동산 중심의 금융 구조는 금융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약화한다. 국내 은행의 대출자산 포트폴리오는 부동산 담보대출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중소기업 대출의 72.4%가 담보대출이며, 그중 94% 이상이 부동산 담보다. 무담보 신용대출 비중은 16.4%에 불과하다. 담보가 부족한 혁신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은행은 기술력이나 사업성이 아닌, 부동산 담보를 보고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금융이 생산적 위험을 평가·관리해 산업 혁신을 지원하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이자 장사’에 머무르는 은행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흔히 걱정하는 금융시스템 부실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진짜 뇌관은 바로 부동산으로의 과도한 신용 집중이고, 은행 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흐르지 못하는 경제 구조의 병목에 있다. 은행은 혁신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본연의 기능을 잃고, 담보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이자 장사’에 머무르고 있다. 돈이 집을 사고파는 데만 머무르면, 새로운 기술도, 혁신 기업도, 양질의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자원이 비생산적인 부동산에 묶여 있는 한,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는 곳에 돈이 몰리는 나라가 성장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총량만을 억제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총량을 통제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돈의 흐름을 바꾸는 정책으로 전환할 때다. 빚의 크기보다 돈이 어디로 흐르는지가 문제다. 은행의 자본이 혁신과 생산적 기업에 투자되어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 담보 위주 대출 규제를 손질하고, 기술력과 사업성을 평가하는 금융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부동산에 갇힌 금융으로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열 수 없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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