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위대한 농부들과 호텔ㆍ레저업계 사람들은 매우 공격적인 이민정책으로 유능한 근로자들을 잃고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민자 노동력 의존도가 큰 농업 등 분야에서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브룩 롤린스 농림부 장관의 전화 보고 다음 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소 유화적인 메시지에 미 국토안보부는 곧바로 해당 업종에 대한 이민자 단속 중단 지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나흘 만에 뒤집어졌다. 트럼프 2기 이민 정책의 설계자로 통하는 스티븐 밀러(39)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단속을 되려 전속력으로 강화해야 한다”며 강경론을 편 결과다.
#2. 미국 국방부는 지난 2일 무기 비축량 부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패트리엇 미사일 등 무기 지원을 중단한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7일 말을 바꿔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방어용 무기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무기 지원 중단 결정을 몰랐다. 무기 공급은 다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단 결정을 주도한 인물은 엘브리지 콜비(45) 정책담당 차관이며 백악관 보고를 거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도 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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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이민, 콜비는 외교안보 ‘지휘’
밀러 부비서실장과 콜비 차관의 막강 위세를 드러내는 장면들이다. 밀러는 이민자 단속ㆍ추방 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속도조절 시도를 저지하고 가속기를 밟도록 강제했고, 콜비는 비록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트럼프조차 몰랐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단 정책을 밀어붙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쥐고 흔드는 ‘젊은 실세’로 밀러와 콜비가 워싱턴 조야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밀러는 강경 이민 정책과 이른바 ‘DEI(다양성ㆍ형평성ㆍ포용성)’ 폐기 정책을 진두지휘하며, 콜비는 외교안보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실행에 옮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을 두 사람이 쥐락펴락하는 셈이다. 둘을 잇는 코드는 ‘아메리카 퍼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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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극단적 트럼피스트’ 참모
밀러는 자타 공인 가장 극단적인 트럼피스트(트럼프주의자)로, 트럼프 집권 1기 때부터 무슬림 입국 금지, 난민 수용 제한 등 강경 이민 정책을 설계한 참모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당시 밀러의 강경 이민 정책은 종종 벽에 부딪히곤 했다. 가령 2017년 지나치게 잔인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 불법 이민자 부모ㆍ자녀 분리 정책을 강행하려 하자 당시 존 케리 국토안보부 장관은 부처 직원들에게 “밀러가 어떤 명령을 내리더라도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린 일이 있었다.
트럼프 2기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비(非)선출직 인사로 부상한 밀러는 1기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선 연관 부처ㆍ기관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그는 이민 정책 유관 부서 담당자들을 자신과 가까운 사람으로 채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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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국토안보부·법무부 수장”
한 트럼프 참모는 “국토안보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이는 밀러”라고 말했고, 보수 법학자 에드워드 휠런은 밀러를 두고 “사실상 법무장관”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운동 때 “밀러에게 (이민 정책을) 맡기면 미국 인구는 1억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밀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실행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보다 더 급진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유일한 인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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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 권한·위상, 국방장관 이상
콜비는 중국 패권 억제에 올인하는 트럼프 2기 국방 정책의 설계자로 꼽힌다. 별명은 모든 핵심 인사들을 잇는 가교라는 뜻의 ‘브릿지(bridge)’다.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외교안보 전략가로 평가받는 그는 트럼프 2기 출범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가 국방부 정책 차관으로 지명됐다. 장관보다 두 직급 아래지만 트럼프의 외교안보 구상을 꿰뚫는 몇 안 되는 참모인 콜비가 갖는 실제 권한과 위상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이상이라는 얘기가 많다.
미국 제일주의의 강력한 신봉자인 밀러와 콜비는 특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를 사실상 ‘접수’한 상황이다. NSC는 대규모 인력 감축 및 구조조정으로 정책 조율 기능이 무력화됐는데, 이러한 권력 공백 상태를 두 핵심 실세가 파고들어 의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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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밀러, NSC 사실상 ‘접수’
마이크 월츠 전 국가안보보좌관 후임으로 지명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고는 있지만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고 유명무실한 상태다. 두 명의 국가안보 부보좌관 중 한 명은 JD 밴스 부통령 보좌관 출신의 앤디 베이커, 나머지 한 명은 밀러 특보 출신인 로버트 게이브리얼 주니어이다.
게이브리얼 주니어는 밀러의 이념과 정책 기조를 충실히 계승해 ‘밀러 사단’으로 분류되는 최측근 인물이다. 콜비-밀러-게이브리얼 주니어로 이어지는 핵심 라인이 가동돼 백악관 NSC를 쥐고 흔든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소식통은 “이전에는 NSC가 콜비의 강경 본능을 제어하는 균형추 역할을 했는데 NSC 기능이 심각하게 약화된 뒤로는 콜비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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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 인태전략 기여 각인시켜야
콜비는 미국의 중장기 국방전략 지침서가 될 ‘2025 국가방위전략(NDS)’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억제와 동맹국 방위 분담 확대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실주의 안보관을 지닌 콜비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 억제는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고 주한미군은 대중(對中)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론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런 콜비는 ‘한국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지’, ‘중국에 저항할 충분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계속해서 따지고 물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으로선 단순한 ‘동맹 유지’를 뛰어넘어 우리가 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필수적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역내 전략적 기여 구조를 효과적으로 각인시켜야 한다. 젊고 힘이 센 실세에 맞서는 한국의 대응 전략은 한층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