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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40조 벤처 투자 수도권 집중 벗어나야

중앙일보

2025.07.13 08:26 2025.07.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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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 교수
이재명 정부의 1호 공약에 포함된 연간 40조원 규모 벤처투자시장 조성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도전적인 정책이다. 2024년 말 현재 11조9000억원 수준인 벤처 투자를 4배 가까이 늘리는 야심 찬 목표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히 투자재원 증액을 넘어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편, 현재 국내 벤처투자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인재와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이지만, 협소한 국내 시장의 한계와 글로벌 진출의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현상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벤처창업 생태계를 소금물 탱크에 비유하면, 스타트업은 소금이고 성장자금은 물이다. 물만 갑자기 늘리면 소금물이 희석되거나 탱크가 넘칠 위험이 있다. 탱크 용적을 전국으로 넓히고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혁신 스타트업을 키워내면서 출구(Exit)도 확대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5개 광역권별로 4조씩 지원해
강점 살리고 해외 연계 꾀하는
자율적 벤처 생태계 구축해야

해법은 행정구역이 아닌 500만 명 규모 인구를 기준으로 한 5개 광역권별 특화 벤처창업 생태계 구축이다. 5개 광역경제권별로 축적된 제조 역량에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생명과학·바이오테크, 에너지·기후대응, 첨단 소재·부품·장비, 우주항공·식품 등 글로벌 수요를 충족하는 클러스터로 육성해야 한다. 이들 생태계는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테스트 베드 역할을 담당하며, 각 권역의 특화 산업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는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 전 검증과 성장의 발판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도권 벤처투자 규모는 현재 10조원 규모에서 20조원으로 확대하되, 나머지 20조원으로 광역 단위별로 평균 4조원 내외의 벤처투자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형평성 차원의 자원배분이 아니다. 각 권역이 보유한 산업적 강점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혁신 거점을 만드는 전략적 선택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라도 글로벌 진출의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넉넉히 잡아도 투자유치 초기(Series A) 단계에서는 해외 진출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자원과 경험이 가장 부족한 창업 초기에 글로벌 비전을 심어주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새로운 혁신 모델(‘Double-TIPS’)을 제안한다. 과학기술원 등 우수 인재들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스타트업을 창업할 때, 지원금의 20%는 한국에서 기반을 다지는 데 사용하고 80%는 미국 등 해외 현지에서 시장 진출과 네트워크 구축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외 벤처캐피털에 모태펀드를 출자하는 방식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뒷받침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각 광역권의 벤처투자 전문기관은 ‘지역 투자’와 ‘글로벌 투자’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권역 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해외 스타트업을 발굴해 해당 권역의 제조업체와 인프라를 테스트 베드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국내외 스타트업은 검증된 테스트 베드를 얻고, 이 과정에서 지역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학·연구기관이 함께 협업하도록 한다. 미국의 지역 제조 네트워크 같은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이런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광역 단위의 모태펀드 운용 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고 벤처펀드 출자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아울러 창업 특별비자 제도를 활성화해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지역 벤처 현장과 연결되도록 하고, 지역 대학의 기술지주회사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어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벤처창업은 본질적으로 통제가 아닌 자율과 확률의 게임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계공이 아닌 정원사의 관점으로 생태계를 바라봐야 한다.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개혁하고, 각 권역의 특화산업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는 혁신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민관이 협력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혁신한 TIPS(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사례처럼, 새로운 협력 모델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과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벤처창업 생태계로 거듭나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태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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