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 2평 독방에 갇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23년 별세해 경기도 양평의 추모공원에 모신 선친을 그리워할까, 병석의 모친이 보고 싶을까. 부모 뜻과 달랐다던 결혼을 뒤늦게 후회할까. 아니면 사저에 혼자 남은 아내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강행한 특검을 원망하고 있을까.
불같은 성정의 그가 40도에 육박하는 옥중 폭염을 낡은 선풍기에 의지해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뇨와 눈 합병증이 악화했다니 열대야 와중에 이래저래 밤잠을 설치고 있을 듯하다. 좌천된 검사가 문재인 정권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벼락출세하더니 급기야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난 세월이 떠올라 회한에 젖어 있을 수도 있겠다.
김건희 의혹과 계엄으로 심판대
'트로이 목마' 같은 가짜보수였나
보수 혁신, 윤석열과 선긋기부터
그러나 너무 늦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언론의 충고를 깡그리 무시하고 소수의 극단적 유튜브에 빠져 국정을 망친 것은 다름 아닌 윤 전 대통령 본인이었다. "아내의 국정개입을 차단하라"고 바른 소리 하던 법조계 선배와 정치권 원로들을 멀리하고 전화도, 텔레그램도 차단한 것은 다름 아닌 윤 전 대통령 본인이었다.
"아내가 '당신은 그냥 검찰총장 하고 내가 대통령 할게'라고 하더라"며 측근들에게 농담하듯 태연하게 전하고도 국정개입을 차단할 특별감찰관을 끝내 임명하지 않은 것도 윤 전 대통령 본인이었다. 국무위원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느닷없이 12·3 비상계엄을 발동해 국격을 떨어뜨리고 보수 진영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도 윤 전 대통령 본인이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권력형 비리를 척결해야 할 검찰 조직은 '윤석열 원죄' 때문에 지금 풍비박산(風飛雹散) 직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검찰개혁을 거론하며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청래·박찬대 후보는 충성 경쟁하듯 속도전을 예고하고 있다. 공수가 역전된 모양새다.
현행 헌법엔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제12조 제3항과 제16조)은 있지만, 검찰청 설치는 헌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다. 따라서 중대범죄 수사만 행정안전부 산하 '중수청'에 넘기고, 기소는 법무부 산하 '공소청'에 맡기려는 민주당의 검찰(청) 해체 방안은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현직 검사들은 "이러다 검찰이 공중분해 되겠다"며 뒤숭숭해한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취임 9개월 만에 사퇴한 것도 불가항력을 감지했기 때문일 거다. 새 정부 첫 검찰총장이 되더라도 해체될 검찰 문 닫고 나올 불명예가 뻔히 예상되니 그나마 신망 있는 총장 후보군은 손사래를 친다. 물론 이 와중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권이 중용했던 호남 출신 L검사를, 이 대통령의 법조계 인맥은 충청 출신 G검사를 민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누가 총장이 된들 가문의 영광이겠나.
윤 전 대통령은 재구속으로 더 불리한 상태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짧고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 윤석열 시대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종북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계엄을 결단했으나 일 처리가 서툴러 되치기당한 미숙한 국군통수권자로 서술할까, 샤넬백을 덥석 받을 정도로 물욕에 눈멀고 무속에 빠진 여인을 익애(溺愛)하다 나라까지 말아먹은 혼군(昏君)으로 묘사할까.
좌파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와 통화(2021년 녹음)에서 김건희 씨는 “원래 우리는 좌파였다. 조국(전 민정수석) 때문에 입장을 바꿨다”고 했다. 적폐청산을 내세워 보수 세력을 탄압한 문재인 정권의 사정 칼춤에 동원됐다가 조국 사태를 계기로 그 정권과 불화하자 살기 위해 보수로 위장 전향했다는 자백 아니었나. '트로이 목마' 같은 가짜 보수였단 말 아닌가. 그렇다면 궤멸 위기의 보수가 윤석열 시대에 미련을 둘 이유는 없다. 혁신위원회를 띄운 보수가 거듭날 길은 자명하다. 거짓 보수와 분명한 선긋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