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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국내 최초 사진 특화 공립미술관서 140년 한국 사진예술 한눈에

중앙일보

2025.07.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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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AI기술 넘나들며 즐기는 한국 사진예술의 역사와 가치


물체의 형상을 필름·인화지 등 감광막(感光膜) 위에 나타나도록 찍은 것을 사진(寫眞)이라 하죠. 1839년 프랑스에서 카메라가 시판된 뒤 사진은 단순한 기록 매체를 넘어 독자적 예술 장르로 발전했어요. 우리나라 사진 예술의 역사는 1880년대 카메라가 국내 반입되면서 시작됐죠.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카메라·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국내에 사진 매체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공립미술관은 없었어요. 지난 5월 29일,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이자 한국 최초의 사진 매체 특화 공립미술관으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개관하기 전까지는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찾아 설립 과정과 한국 사진 예술의 과거와 미래를 살폈습니다.

김보경(서울 둔촌초 6)·김연우(경기도 위례초 6)·정서우(서울 고명초 5·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찾아 한국 사진예술사의 과거와 미래를 살폈다.
수도권 지하철 창동역 1번 출구로 나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저 멀리 정육면체 구조를 살짝 회전시킨 형태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는 카메라의 조리개가 열리고 닫히는 형태에서 착안한 것으로, 2019년 공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와 한국 건축가 윤근주의 협업으로 탄생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건물이죠. 여러 직선을 층층이 쌓은 듯한 외벽은 시간에 따라 빛을 받아 검정과 회색을 오가는데, 이는 사진이 빛과 시간을 포착하는 방식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겁니다. 내부에는 전시실과 영상홀, 교육실과 사진 관련 서적을 모은 포토라이브러리, 사진 현상에 필요한 암실(暗室) 및 포토북·음료와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도 있죠.

김보경·김연우·정서우 학생기자가 1층 로비에 들어서자 한정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관장과 손현정·박소진 학예연구사가 맞이했어요. 먼저 한 관장과 함께 4층의 교육실로 자리를 옮겨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건립에 얽힌 여러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어요.
손현정(맨 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광채: 시작의 순간들' 전시에 소개된 여러 작가에 관해 설명했다.


Q : 보경: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왜 도봉구 창동에 있나요.

서울시는 한국의 수도이자 세계 5위권 메가시티로서 2015년 '박물관·미술관 도시 서울' 조성 계획을 세웠어요. 서울 전역에 다양한 테마의 박물관·미술관을 조성해 지역 간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고, 문화도시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였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사진 전문 미술관 건립 계획도 계획에 포함돼 있었어요. 우리는 휴대전화·카메라 등으로 사진을 찍어서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사진을 활용해 현대 미술을 하는 작가들도 많으니까요. 결국 서울 동북부 문화 인프라 확충을 위해 창동에 사진 매체 특화 공립미술관을 설립하게 됐죠.


Q : 연우: 개관에 앞서 10여 년 동안 전시·수집·연구·교육 방향 설정을 준비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미술관을 새로 설립하려면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해요. 저희가 제일 먼저 고려한 건 소장품 수집 방향성 설정 연구였어요. 우리나라의 사진 예술 역사는 약 140년 정도로 꽤 긴 편입니다. 그런데 이걸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물이 많지 않아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서점에 가보면 미술사 관련 책은 많은데, 사진사 관련 책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저희는 긴 역사를 가진 한국의 사진 예술을 연구하는 기반 구축을 위해 지금까지 약 2만 점의 작품을 모으고 연구했어요. 예를 들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 기념 전시인 '광채: 시작의 순간들'은 한국에서 사진이 예술로 자리 잡아 온 여정을 살펴보는데, 이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가들 역시 저희 연구의 결과물이죠.
박소진 학예연구사(맨 오른쪽)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사진이 현대 예술에서 어떤 형태로 영역을 확장 중인지 보여줬다.


Q : 서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한 전시·수집·연구·교육 방향도 많은 준비가 필요했지만, 공간 조성도 어려웠어요.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건물 내부에 제대로 갖춰진 공간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어요. 그 상태에서 가구·조명을 설치하고 전시장을 조성했죠. 과정은 어려웠지만,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개관한 뒤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Q : 보경: 개관 기념 특별전 '광채: 시작의 순간들'과 '스토리지 스토리'가 열리고 있어요. 두 개의 특별전을 아우르는 주제인 '광적인 시선'은 어떤 의미인가요.

'광적인 시선'에서 광은 '빛 광(光)을 의미하는데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첫 번째는 빛의 그림을 보여주는 전시라는 의미죠. 사진은 빛이 들어왔을 때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니까요. 두 번째 의미는 저희의 광적일 정도로 집요했던 준비 과정을 의미해요. 10년 동안 준비한 결과를 전시로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담긴 겁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포토라이브러리에는 사진과 관련된 여러 분야의 전문서적은 물론, 청소년을 위한 사진 입문서도 구비돼 있다.

Q : 연우: 앞으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어떤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시나요.

미술관은 누구나 와서 즐겁게 예술과 친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해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사진이란 매체 특화 미술관이기 때문에 누구나 와서 우리나라 사진 예술의 역사와 가치를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Q : 서우: 특히 어린이·청소년이 어떤 활동이나 체험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이란 매체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에요. 예를 들어 직접 사진을 찍고 인화해 보거나, 미술관 근처로 나가서 사진 작업을 해볼 수도 있겠죠. 또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사진 감상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싶어요.

정물화의 영향이 느껴지는 정해창의 사진. 제목·연도 미상.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한국 근대 사진 예술의 하이라이트를 보다

현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는 개관 기념으로 두 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손현정 학예연구사와 함께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이 열리고 있는 3층 전시실로 향했어요. '광채: 시작의 순간들'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지난 10여 년간 수집한 소장품 중 한국 근대 사진 예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작가 정해창·임석제·이형록·조현두·박영숙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예요.

서우 학생기자가 "한국 근대 예술사진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라고 궁금해했는데요. 여러 작가 중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정해창(1907~1967)을 꼽을 수 있어요.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3월 조선인 최초로 '예술사진 개인 전람회'를 개최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죠.

전시에서는 하얀 머리쓰개를 쓰고 단정하게 한복을 입은 여인, 망태를 메고 눈길을 걷는 아버지와 아들의 뒷모습, 가파른 흙길을 내려가는 조선의 지게꾼 등 정해창이 카메라로 포착한 당시 조선인의 생활상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어요. 사진임에도 조선의 풍속화 같은 느낌이 들고, 사진 위에 동양화에서 보이는 요소인 낙관을 찍은 경우도 있었죠. 반면 정물 사진에서는 유리 공예품, 석고 여인상, 영문책, 파이프 등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사물을 서양 정물화와 닮은 구도로 구성한 사진도 있었죠. 즉, 동양화와 서양화의 요소가 그의 작품에 모두 녹아든 겁니다.

"정해창은 1907년에 태어나서 활동한 사람이라 김홍도·신윤복 등의 조선 풍속화에 익숙했어요. 당시 가장 최신 서양식 기계였던 카메라로 사진을 풍속화처럼 찍은 거죠. 또 정해창은 일본에서 유학하며 서구 회화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사진으로 노동자와 현실을 응시하며 리얼리즘 사진 기조를 정립한 임석제의 '소작농강노인'(1946).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1948년 해방 이후 한국 최초의 예술사진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는 임석제(1918~1996)입니다. 서울타임스·대한사진통신사 소속 보도사진가로 활동했던 그는 자신이 목격한 해방 직후 한국의 다양한 현실을 사진으로 포착하면서, 한국 사진계의 리얼리즘 기조를 여는 전환점을 마련했죠. 특히 노동자·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사진을 많이 남겼어요. 탄광 노동자들의 일상 장면을 근거리에서 포착한 '즐거운 한때'(1955)는 검댕 묻은 얼굴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았는데요. 고된 작업 현장 속에서도 연대와 희망을 강조하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는 단순한 피사체나 배경이 아닌, 당시 시대상을 압축해 상징하는 주인공입니다.

세 번째로 살펴볼 작가는 1950년대부터 한국전쟁 전후 도시의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리얼리즘 사진으로 담아낸 이형록(1917~2011)입니다. 1930년대 사진 활동을 시작해 다수의 공모전에 입선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1955년에는 사진그룹 신선회를 창립해 당시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생활주의 리얼리즘 경향을 주도한 작가예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한국인의 생활사를 기록한 이형록의 '구성'(1956).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바삐 돌아가는 시장의 풍경을 담은 '시장의 아침'(1957)과 '거리의 구두상'(1955) 등은 한국전쟁(1950~1953)이 종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의 우리나라 모습이 담겼죠. 손 학예사가 "이형록의 사진은 종전 후 폐허와 절망이 아닌, 그럼에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사가 그대로 담겨 있어요"라고 설명했죠.

네 번째로 살펴볼 조현두(1918~2009)는 추상화를 연상케 하는 사진으로 한국 사진 예술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 작가입니다. 임석제·이형록 작가가 당시 주류였던 현실을 포착하는 리얼리즘을 추구한 것과는 반대의 흐름이죠. 손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조현두 작가의 작품 중 하나로 이끌면서 "무엇을 촬영했는지 맞춰보세요"라고 했는데요. 크림을 휘저은 것 같기도 하고,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사막 같기도 한 이 작품의 이름은 '잔설'(1966)로 겨울철 서울 마포 강변의 강바닥의 모래가 영하의 날씨에 얼어서 부풀어 오른 것을 촬영한 겁니다.

사물과 풍경의 형상을 해체해 추상적 형태로 사진을 탐구한 조현두의 '잔설'(1966).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이처럼 조현두는 강가의 모래나 얼음과 같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사체를 새로운 카메라 앵글로 예리하게 관찰하고, 사진관을 운영하며 익힌 특수 효과와 다양한 종류의 필름을 실험적으로 활용해 그만의 독특한 조형성을 이끌어냈죠. 사진은 명확한 형태의 피사체가 담긴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리얼리즘과 추상주의 외에 여성주의도 한국 예술 사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흐름입니다. '광채: 시작의 순간들'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가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사진에 담아온 박영숙 작가(1941~)예요. 박영숙 작가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대학교 재학 중 사진 동아리 '숙미회'를 창립하고 이끌었죠. 숙미회를 통해 여대생 회원들과 교류하고 전시회도 열면서 여성 사진가의 활동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어요.

한국 근현대 예술사진사에서 여성주의 사진으로 잘 알려진 박영숙의 'NEW MASK'(1963).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박영숙 작가는 1965년부터 여성지 『여상』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하며 다양한 사진을 남겼어요. 『여상』에서 그가 담당한 코너는 포토에세이 '시와 사진'이었습니다." 전시실에서는 모래 위에 엎드려 누운 여성의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요. 사진의 60% 정도는 모래사장으로 표현된 여백으로, 시를 써넣는 공간이었죠. 이후 박영숙은 여성 사진기자로서 활동하면서 겪은 경험과 여러 사진 단체 활동을 통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본격화했고, 1980년대에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해체하고자 하는 실험적 작업으로 한국 사진계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죠.


최신 기술과 만나 경계 넓히는 사진 예술


보경 학생기자가 "현대 예술에서 사진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도 궁금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답은 두 번째 전시인 '스토리지 스토리'에 있어요. '광채: 시작의 순간들'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소장품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소개하는 전시라면, '스토리지 스토리'는 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현대미술 속 사진을 조명하는 전시예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박소진 학예연구사와 함께 2층 1전시실로 이동해 '스토리지 스토리'를 관람했죠.

익숙한 이미지를 재조합한 서동신 작가의 '기능적 함수의 오작동' 시리즈를 살펴본 정서우·김보경·김연우(왼쪽부터) 학생기자.
"사진의 어원은 베낄 사(寫)와 참 진(眞)으로 본래 현실을 모사하는 행위로 여겨져 왔지만, 현대미술 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시각이미지를 작업하는 현대 작가들은 사진을 여러 매체와 융합해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죠. 사진을 매개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각기 다른 시선과 감각을 활용해 작품으로도 기록했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스토리지 스토리'랍니다."

'스토리지 스토리'에서는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먼저 '사진은 보는 즉시 의미를 알 수 있는 정보 전달 매체'라는 전제를 벗어난 서동신 작가의 작품을 살폈습니다. 서 작가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건물 내부를 촬영한 세 장의 사진을 흰색 배경 위에 겹쳐 배치한 작품인데요. 언뜻 봐서는 무엇을 찍었는지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없어 소중 학생기자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죠.

가장 위쪽은 ‘보’라고 불리는 미술관 계단실 천장에서 내려온 구조물을 오른쪽 측면에서 촬영한 사진, 가운데는 미술관의 계단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촬영한 사진, 맨 아래 사진은 미술관 사무실에 있는 파쇄기의 윗면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렇게 기존 이미지를 해체해 사진이 가진 정보의 값을 없앴기 때문에 감상자는 낯선 이미지가 주는 시각적 경험에 집중하게 되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죠.
정지현·박상민의 'Cast Capture_3P 02_7043'. 사진이지만 조각과 같은 특성도 보인다.

정지현·박상민 작가의 'Cast Capture_3P 02_7043'은 조각과 가까운 형태로 구현된 사진이에요. 보경·연우·서우 학생기자가 전시실 안에 들어서자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플라스틱 조각이 보였는데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내부를 3D 스캔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간을 재구성한 3D 프린트 작품으로, 아래에 서자 밑면에 있던 그림처럼 보이는 형상이 눈에 들어왔죠. 미술관의 건축 과정이 담긴 기록사진을 빛의 투과로 생기는 표면의 깊이 차이를 활용해 이미지를 구현하는 리쏘페인이라는 기법으로 새겨 넣었거든요. 쉽게 말해 조명이 이 조형물에 스며들면 밑면에 숨겨진 이미지가 드러나게 설계된 거죠. 최신 기술과 접목된 사진 예술, 놀랍지 않나요.

작품을 요모조모 살피던 연우 학생기자가 "요즘은 인공지능(AI)이 여러 분야에서 화두인데요. 사진 예술에서는 AI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궁금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에 대한 좋은 예시도 전시 중이에요. 바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오주영 작가의 작품입니다.

오주영 작가의 '기계 감상 시스템'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소장품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된 관람객 참여형 작품이에요. 박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벽면에 있던 수백 개의 사진 중 하나씩 3장을 고르게 했는데요. 첫 번째 사진은 세 마리의 백조, 두 번째 사진은 해변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 세 번째 사진은 흐릿한 실루엣의 움직이는 동물이었죠. "고른 사진을 테이블 위에 배열한 뒤 빨간 버튼을 누르면 AI가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감상한 뒤 그 결과를 화면으로 보여줄 거예요." 박 학예연구사의 말에 따라 사진을 올려놓자 AI의 분석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AI와 사진 감상을 나누는 오주영 작가의 '기계 감상 시스템'을 체험했다.

AI는 세 장의 이미지의 공통점은 '고요함 속에 감춰진 불안함과 아쉬움'이라고 분석했어요. 물 위에서 고요해 보이는 백조는 감정 표면 아래 복잡한 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 같고, 해변의 군중은 연결되고 싶다는 갈망이 있지만 오히려 고독하며, 흐릿한 실루엣의 동물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죠. AI의 해석에 소중 학생기자단은 "앗,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해봤는데"라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처럼 AI의 해석 결과는 때때로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관람객은 AI에게 시각적으로 이미지를 해석하는 방식을 학습시키는 동시에 AI가 구성한 해석도 학습하게 되죠. 이렇게 AI를 통해 되돌아온 해석은 인간이 만든 의미일 수도 있고, 기계가 새롭게 만들어낸 해석일 수도 있는데 결국 감상의 주체가 인간인지 기계인지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져요. AI 시대에 인간이 기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그 간극을 조율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스토리지 스토리'에서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 작품을 감상한 소중 학생기자단은 4층으로 이동해 포토라이브러리를 둘러봤어요. 한국사진사를 중심으로 사진 전반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서와 자료가 가득한 사진 전문 도서관입니다. 물론 사진에 관심 있는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장르의 책도 있죠.

전문 장비를 갖춘 암실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4층에는 전문 장비와 설비를 갖춘 암실이 있어요.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시설이지만, 필름과 인화지로 사진을 현상하던 과거에는 동네 사진관마다 있는 시설이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암실 특유의 빨간 내부 조명부터 필름 확대기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시설을 실제로 살폈는데요. 앞으로 이곳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여러 실습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최초의 사진 매체 특화 공립미술관의 설립 과정, 한국 사진 예술의 역사, 사진에 대한 여러 고정 관념을 깨는 작품을 살펴봤어요. 카메라와 포토샵으로 누구나 사진과 이미지를 창작하는 시대, 앞으로 여러분이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세요.

동행취재= 김보경(서울 둔촌초 6)· 김연우(경기도 위례초 6)· 정서우(서울 고명초 5) 학생기자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만나는 사진 입문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포토라이브러리에서는 국내외 사진 전문서적 외에 사진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책도 많아요. 사진에 관심 있는 청소년을 위해 포토라이브러리와 시중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 관련 도서를 모았습니다.

『포토그라픽스: 만화로 보는 사진의 역사』
뱅상 뷔르종 글, 권진희 옮김, 176쪽, 프시케의숲, 1만9800원

만화로 배우는 사진의 역사. 프랑스의 한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사진을 가르치고 있는 전문가인 저자가 사진기술의 발달 과정은 물론, 상징적인 장비와 브랜드, 대담한 흔적을 남긴 사진작가와 그들의 작품, 시대별 주요 트렌드와 그 영향까지 다양한 정보를 만화 및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소개한다.

『사진작가가 될 거야』
이재윤 글, 이지선 그림, 이랑 감수, 32쪽, 오늘책, 1만4000원

사진작가는 무슨 일을 할까. 평범한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해 현대 사진이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진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삶을 통해 배워보자. 예리한 눈, 재빠른 손,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원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잡아내 ‘결정적 순간을 찍은 사진작가’로 불리는 그의 족적을 통해 사진의 매력도 배울 수 있다.

『나를 찍고 싶었어』
신순재 글, 김명진 그림, 40쪽, 웅진주니어, 11000원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사진으로 그들을 감싸 안았던 사진작가 최민식의 이야기.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카메라의 렘브란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킨 최민식의 이야기는 사진작가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발터 벤야민이 들려주는 복제 이야기』
강용수 글, 175쪽, 자음과 모음, 11000원

사진의 탄생과 원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철학서.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핵심 내용을 청소년의 눈높이로 재구성했다. 주인공이 가정과 학교에서 경험하는 여러 사건을 매개로 대중 예술, 복제 시대, 아우라 등 현대 대중문화와 사진 예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여러 개념을 배울 수 있다.

『안녕? 나의 핑크 블루』
소이언 글, 윤정미 사진, 56쪽, 우리학교, 1만6000원

여자아이는 분홍색과 주방놀이를 좋아하고, 남자아이는 파란색과 모형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오래된 구분은 진짜일까. 하얀색은 순수, 검정은 애도, 초록은 평화를 상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젠더와 컬러코드에 대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 보고, 나만의 색도 찾아보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지역 간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도봉구에 사진 전문 공립 미술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돼 좋았어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만난 두 전시는 모두 주제가 명확했고, 참여한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작품 스타일도 다양해서 지루하지 않게 즐겼어요. 192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여러 종류의 사진 작품을 보며 작품을 향한 작가들의 열정이 엄청나다는 느낌을 받았죠. 향후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을 시작하면 사진을 이해하기 힘든 친구들도 사진미술관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보경(서울 둔촌초 6) 학생기자

사진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매체 중 하나입니다.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중요한 자료를 찍어두기도 하죠. 하지만 소중 독자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사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많이 없을 거예요. 저는 이번 취재를 계기로 사진의 매력에 더 흠뻑 빠지고 사진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어요. 계획부터 무려 10년이나 걸려 완성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사진이 예술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매체라는 점과 사진의 매력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광채: 시작의 순간들' 전시에서 만난 정해창·이형록·임석제·조현두·박영숙 작가님들의 사진과, '스토리지 스토리' 전시에서 만난 여러 작품엔 각각의 매력이 담겨있었죠. 여러분도 이제는 무심코 사진만 찍지 말고 사진에 대해 한 번 더 깊게 생각해 보면서 사진의 매력에 빠져보길 바랍니다.

김연우(경기도 위례초 6) 학생기자

이번에 저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취재를 통해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 즉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나라 최초로 개인 사진전을 연 정해창 작가, 한국전쟁 이후 서민들의 삶을 리얼리즘 사진에 담아내신 이형록 작가 등 과거의 사진과 첨단 기술을 이용한 현대의 사진들을 보면서요. 흑백사진은 인류 최초의 고대 벽화를 보는 것 같았죠.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할머니·할아버지의 시대상과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글로 읽었던 것보다 더 이해가 잘되더라고요. 또, AI가 사진의 뜻을 해석해준 게 제 생각과는 많이 달라서 신기했습니다. 사진이 앞으로 과학기술과 함께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하고 기대돼요. 여러분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 가서 사진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정서우(서울 고명초 5) 학생기자



성선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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