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장갑 벗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 명승부였다. 호주 교포 그레이스 킴(25·한국명 김시은)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역전 드라마를 쓰며 우승했다.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극적인 칩인 버디와 끝내기 이글을 잡아내며 ‘메이저 퀸’으로 등극했다.
그레이스 킴은 13일(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골프장(파71·6218야드)에서 열린 대회 연장 승부에서 지노 티띠꾼(22·태국)을 물리치고 정상을 밟았다. 나란히 14언더파 270타로 맞서 벌인 1차 연장전에서 그림 같은 칩인 버디를 기록한 뒤 2차 연장전에서 이글 퍼트를 성공시켜 우승을 확정했다.
2023년 4월 롯데 챔피언십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승했던 그레이스 킴은 통산 2승째를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장식했다. 공교롭게도 2년 전에도 연장 승부를 벌여 성유진(25)과 류위(30·중국)를 꺾었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은 120만달러(약 16억5000만원)다. 또, LPGA 투어 5년치 시드도 받았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2000년생 그레이스 킴은 호주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호주 여자골프의 전설인 카리 웹(51)이 주는 유망주 장학금을 4차례나 받았고, 2021년에는 호주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에도 올랐다. 2023년부터 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그레이스 킴은 자신의 3번째 출전 대회인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우승이 없었지만, 이번 메이저대회를 제패하면서 호주의 차세대 에이스 자리를 굳혔다.
밝은 성격의 그레이스 킴은 평소 한국 선수들과도 가깝게 지내기로도 유명하다. 이날 연장전 우승 직후에는 이미향(32)과 김효주(30), 최혜진(26) 등으로부터 축하를 받기도 했다. 같은 호주 교포인 이민지(29)는 직접 샴페인을 뿌리며 기쁨을 나눴다.
10언더파 공동 3위로 출발한 그레이스 킴은 이날 널뛰기 라운드를 했다. 전반 출발과 함께 보기 2개를 적은 뒤 7번 홀(파5)에서 이글을 잡았다. 이후에도 버디 2개와 더블보기 1개, 다시 버디 2개로 힘겹게 2타를 줄였다. 경기 흐름은 18번 홀에서 180도 달라졌다. 그레이스 킴이 완벽한 세컨드 샷으로 이글을 추가하면서 티띠꾼과 함께 14언더파 공동선두로 최종라운드를 마쳤다.
18번 홀에서 펼쳐진 1차 연장전에서 그레이스 킴은 세컨드 샷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려 페널티 구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1벌타를 받고 한 4번째 어프로치가 컵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역시 버디를 잡은 티띠꾼과 비겼다. 이어 2차 연장전에선 침착한 그린 공략으로 핀 3.6m 옆을 지켰고, 이 이글 퍼트를 집어넣어 경기를 끝냈다. 3라운드까지 10언더파 공동 3위를 달렸던 이소미(26)는 마지막 날 2타를 잃어 최혜진과 함께 8언더파 공동 14위를 기록했다.
그레이스 킴은 “1차 연장전 상황(벌타)은 실망스러웠지만, 마지막까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면서 “올해 초반에는 의욕이 떨어지고 회의감도 들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감기까지 걸려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해 그저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