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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엡스타인 음모론 역풍…돌아선 MAGA “공화당 40석 잃을 것”

중앙일보

2025.07.13 21:27 2025.07.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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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가 지난 11일 플로리다주 템파에서 주최한 ‘스튜던트 액션 서밋’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AP=연합뉴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미 법무부가 최근 마가들이 제기해 온 ‘제프리 엡스타인 음모론’이 근거 없다는 발표를 하면서다. 불만은 발표를 주도한 팸 본디 법무장관에서 본디 장관을 옹호한 트럼프 대통령으로까지 옮겨가는 분위기다. 마가 진영은 “엡스타인 문제로 트럼프가 마가 지지를 잃고 내년 중간선거에서 40석을 잃을 것”이란 경고까지 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마가 진영이 주축인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가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플로리다주(州) 탬파에서 연 ‘스튜던트 액션 서밋’ 행사에선 백악관과 법무부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폭스뉴스 진행자 로라 잉그래햄이 “엡스타인 수사 결과에 만족하는가”라고 묻자, 행사장은 거센 야유로 가득 찼다. 마가 진영 인사들은 팸 본디 법무장관을 해임하라고 강하게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마가 세력과 동떨어진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반발은 지난 7일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이 2쪽 자리 공동 발표문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본디 법무장관은 엡스타인에 대한 타살 증거가 없고, 그가 작성한 ‘유력 인사 고객 명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미성년자 상습 성착취 혐의로 체포된 직후 숨진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 AP=연합뉴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억만장자인 엡스타인은 지난 2019년 미성년자 상습 성착취 혐의로 체포된 직후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엡스타인과 교류했던 미국 정·관계 유력인사들이 연루된 성 접대 고객 리스트가 있다거나 엡스타인이 살해당했다는 등의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마가 진영은 엡스타인의 인맥에 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당 쪽 인사들이 명단 공개를 막기 위해 엡스타인을 제거했으며 법무부, FBI, 중앙정보국(CIA) 등 이른바 ‘딥 스테이트’가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엡스타인 음모론’을 제기해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엡스타인의 고객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무부의 발표 이후 마가 진영은 폭발했다. 특히 법무부가 엡스타인의 자살 증거라며 공개한 교도소 폐쇄회로(CC) TV 영상에서 1분이 잘린 것이 드러나자 음모론이 더 증폭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팸 본디 법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트럼프 대통령까지 진화에 나섰다. 그는 지난 12일 트루스소셜에 “마가는 한 팀”이라며 “절대 죽지 않는 엡스타인이라는 사람을 두고 우리의 완벽한 정부를 이기적인 자들이 흠집 내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년 동안 엡스타인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엡스타인에게 허비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엡스타인 관련 의혹은 민주당이 퍼뜨린 정치적 술수라며 “팸 본디(법무장관)가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놔두자”고도 했다.

하지만 마가 진영의 분노는 더 커지는 분위기다. 찰리 커크 터닝포인트USA 창립자는 WP에 “엡스타인 문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누가 우리를 지배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노의 근저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엡스타인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이가 트럼프 대통령이란 점이 작용한다. 자신이 ‘딥 스테이트’와 정보기관의 희생양이라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되면 관련 문건을 당장 공개하겠다고 약속해 마가 세력의 호응을 얻어냈다. 본디 장관도 지난 2월 폭스뉴스에 “엡스타인 고객 리스트가 내 책상 위에 있다”고 말해 이들의 기대를 키웠다.

이에 마가 진영 비판의 칼은 트럼프로 향하고 있다. 터커 칼슨 폭스뉴스 전 앵커는 “엡스타인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 대응은 바이든 행정부를 연상시킨다”며 “내가 표를 준 정부가 ‘사건 종결. 입 다물어, 음모론자야’라는 반응을 보인 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엡스타인 문제로 마가 지지층의 10%를 잃게 되면 공화당은 2026년 중간선거에서 40석을 잃고, 대선에서도 패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트럼프 비난에 앞장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12일 X(옛 트위터)에 "그(트럼프)는 엡스타인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엡스타인을 여러 번 언급했다"며 "약속대로 문건만 공개하면 된다"고 했다. 머스크는 지난달 6일엔 트럼프가 엡스타인 성범죄 사건에 연루됐다는 내용의 정치평론가의 글을 X에 게시한 바 있다.



이승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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