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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공백, 중국 보도가 장악”…트럼프 조치 여파 전방위 확산

중앙일보

2025.07.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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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리(VOA) 로고 앞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D 프린팅 미니어처 모델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정부 후원 미디어 기관에 대한 축소 조치 이후 중국이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들이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서 그 공백을 메우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중국 국영 방송이 VOA를 대체해 각국 보도를 장악했다”며 “글로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에선 VOA가 사라지고 중국중앙방송 CCTV 콘텐트가 주간 코너로 편성됐으며, 태국에서는 중국관영방송 CGTN 콘텐트로 교체됐다.

지난 2월 태국 국영채널 MCOT의 VOA 프로그램(왼쪽)이 5월엔 중국관영방송 CGTN 콘텐트(오른쪽)로 대체됐다. 사진 WSJ 캡처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나이지리아에선 중국 국제라디오가 영어 외에도 하우사어, 요루바어, 이보어 등 현지어로 방송하며 현지화 공략에 나섰다. 에티오피아 국영방송에는 ‘중국 시간’이라는 이름의 코너가 신설돼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등 중국 제작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일부 외교 관계자들은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방송 편성이 아니라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의 일환이라고 보며 양국 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WSJ가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단순한 방송 교체가 아니라, VOA의 공백을 조직적으로 메우려는 중국의 전략으로 해석했다. 로버트 달리 윌슨센터 미·중 연구소 소장은 WSJ에 “중국 내에서도 VOA는 영향력을 가졌던 매체였다”며 “(이번 조치가) 중국 여론에 영향을 줄 기회를 미국이 스스로 버린 셈”이라고 평가했다. 에메카 우메제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대학 연구원은 “중국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짚었다.

중국은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후시진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전 편집장은 SNS에 “미국의 반중 이념 요새가 내부에서 무너진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다”고 적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의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중국 보도에 대한 흠집 난 실적은 결코 비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언론사들이 그간 중국 문제를 다룰 때 공정하거나 정확하지 않았던 사례들이 꽤 있었고, 그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는 뜻이다.
지난 3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미국의 소리(VOA) 본사 건물. AFP=연합뉴스

VOA는 1942년 나치 선전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다. 냉전기에는 공산권을 겨냥한 미국의 대표적 정보 채널로 꼽혔다. 방영 당시 49개 언어로 100개국에 방송을 이어오며 대외 전략의 핵심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미디어 수석 고문인 카리 레이크 VOA 총국장은 “(VOA가) 반미적이며 외교 정책에 어긋나는 콘텐트를 방영해왔다”고 주장하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예산안에서 VOA를 완전히 폐지하고 폐쇄 비용만 책정하겠단 명령을 내렸다. 미국 연방 법원은 지난 4월 VOA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 일부 프로그램 복원을 명령한 상태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수십년간 쌓아온 미국의 국제 미디어 역량을 약화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간 북한, 이란 등에서 VOA가 거의 유일한 미국 시각 전달 창구였던 만큼, 방송 중단은 정보 접근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한국을 통한 위성 신호를 사용한 VOA 방송이 3월 15일부로 중단됐다.

미 의회 내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VOA의 규모 축소에 찬성하면서도 미국의 정보 확산 역량 유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마리오 디아스 발라르트 하원의원은 “VOA는 과거 과도하게 팽창했지만, 여전히 국가 이익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한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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