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서울 시민은 물론 서울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한 번은 꼭 찾게 되는 공간이자, 국민과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공공 건축물입니다. 하지만 두 건축물은 극과 극처럼 다릅니다. 우선 DDP는 우주선을 닮은 곡선 형태와 금속 표면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2014년 3월 개관 당시 한국을 찾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는 “건축물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풍경으로 아우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DDP가 준공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도시·건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DDP가 역사적 맥락을 잘 살린 것인지, 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룬 것인 지에 대해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2013년 개관한 서울관은 존재감이 거의 없습니다. 건물도 납작하고, 외부 마당과 주변과의 경계도 거의 없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미술관 마당이고, 그 길은 다시 뒤에 자리한 조선 시대 종친부 건물과 이어집니다. 번쩍이는 표면 같은 것도 없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장은 거의 모두 지하층에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미술관’이 건축가의 의도였다는 점입니다. 알고 보면 이곳은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무형(無形)의 미술관’입니다. 이곳을 설계한 민현준(57·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MPART) 대표 건축가) 홍익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책 『셰이프리스 미술관(Shapeless Museum)』(열화당)을 읽어 보니 이 부지에 미술관이 결국 지어진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문화재법에 따라 옛 기무사 본관, 이전 복원할 종친부의 두 건물, 인접한 경복궁과 관련해 각각 심의를 거쳐야 했고, 건물 높이는 12m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전시장이 지하층에 있는 이유입니다.
미래의 미술관 기능을 담으면서도 “터에 켜켜이 쌓인 역사를 살리고자” 했다는 건축가의 얘기를 듣고 나면, 모든 공간의 디테일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6월 24일자 21면)에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이 터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건축은 그 터의 역사적 맥락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4월부터 서울관에서 열린 호주 조각가 론 뮤익의 전시가 지난 14일 관람객 수 52만 명 기록을 남기고 막 내렸습니다. 미술관은 그렇게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왔습니다. DDP와 서울관에 더 좋은 프로그램이 늘고, 관람객이 건축에도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겉모양만 보고 ‘좋다’ ‘싫다’ 극단적으로 평가하는 대신에, 이들 공공 건축이 어떤 개념과 합의 과정을 통해 완성됐는지 알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합니다. 서울에서 유서 깊은 지역에 지어진 극과 극의 두 건축물,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