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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슬램덩크의 청춘’이 옛이야기가 되는 날

중앙일보

2025.07.1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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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키 도모코 도쿄 특파원
“선수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상대팀의 좋은 플레이에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냅시다.”

지난 7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가나가와 대회 개회식에서, 추첨으로 선수선서를 맡게 된 게이오고 3학년 야마다 노이(山田望意) 주장의 발언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요즘 일본에선 여름 고시엔 지방 예선이 한창이다. 가나가와현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격전 지역으로, 이날 개회식에는 172개 팀이 총출동했다. 구장 내 통로에는 ‘첫 경기 돌파’ ‘16강’ ‘고시엔 우승’ 등 제각각의 목표를 적은 문구가 붙어있었다. 학교는 다르지만 모두 학교 부카쓰(部活·동아리활동)에서 만나 고된 훈련 끝에 이곳까지 온 이들이다. 이런 서로의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하자는 야마다 주장의 제안은 SNS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 7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야마다 노이 주장이 선수선서를 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H2’ ‘슬램덩크’ ‘하이큐!!’ 같은 만화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중·고등생들에게 부카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국의 약 80% 학생이 스포츠나 음악 등 특정 부카쓰에 소속돼 있는데, 이들에게는 학급과 버금가는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깊은 신뢰관계를 쌓고,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이처럼 일본 청춘의 대명사인 부카쓰에도 최근 저출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야구·축구 등 팀스포츠의 경우 선수부족으로 운영이 어려운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나가와 대회 개회식에도 부원이 부족한 학교끼리 구성한 ‘연합팀’ 6개가 참가했다. 또 휴일에도 연습해야 하는 부카쓰의 특성상, 지도교사들의 근무환경 개선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22년 우선 공립 중학교를 대상으로 부카쓰를 민간단체나 기업 등이 운영하는 지역 클럽에 위탁 운영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 방식으로 지난 3년간 휴일 부카쓰 활동을 민간이 지원하도록 준비했고, 2026년부터는 평일을 포함한 본격적인 위탁운영을 실시할 예정이다.

고베시는 2026년 8월, 모든 시립 중학교의 부카쓰를 폐지하고, 지역 클럽으로 이행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지난 1~2월 운영단체를 모집한 결과 등록한 단체가 전체 부카쓰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달 말까지 추가 모집 중이다.

고등학교도 앞으로 이런 변화를 피해가긴 어려워 보인다. 한국의 지인들이 “학생들이 공부 외에도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는 일본이 부럽다”고 했던 부카쓰 문화가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쓸쓸하다.





오누키 도모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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