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특한 시집을 선물 받았다. 시인 이인철의 『AI 인류』라는 시집. 시집을 받은 후 천천히 읽다가 문득 누가 해설을 썼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놀랍게도 챗GPT가 쓴 것이었다. 시인에게 전화를 했다. 정말 챗GPT가 쓴 게 맞냐? 글이 맘에 드냐?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을 받아본 문학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린 어떻게 먹고살라고 이러느냐?” 하더라며 웃었다.
시인과 통화한 후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시인이나 작가들은 언어의 힘을 믿는 사람들. 그래서 마치 보석세공사처럼 언어의 배열과 문장의 직조에 공을 들인다. 그런데 이런 언어들이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사람의 가슴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나온다는 생각을 하면, 기계가 쓰는 글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크게 공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야생의 들꽃과 함께 숨 쉰 말, 새와 곤충과 나무,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과 함께 숨 쉰 언어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해설까지 써내는 AI
인간의 힘 유례없이 커졌지만
결국 행복 앗아가는 것 아닐까
그러나 내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과학 혁명의 결실 중의 하나인 인공지능(AI)을 거부하고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살려 한다고 하더라도, 디지털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힘은 경이적이고 유례없이 커졌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인간이 이룩한 과학 혁명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면서 그것의 한계와 종말에 대한 견해까지 밝히고 있다. 나는 과학 혁명 가운데 무엇보다 미생물의 발견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인간은 지구 위에 있는 생명체 중 약 99.99%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특히 미생물에 대해서. 인간의 눈이 미생물을 처음 본 것은 1674년 현미경이 발명된 뒤부터. 그 후 300년간 인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생물 종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지식을 통해 미생물들이 일으키는 가장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질병의 대부분을 퇴치하는 데 인류는 성공했고, 미생물을 의료와 산업에 이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어쩌다 몸이 아파 병원이나 약국을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올 때마다 과학과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1945년 미국 과학자들이 앨러모고도 사막에 첫 원자폭탄을 터뜨린 이후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만 아니라 지구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 일어났던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을 보면서 인간이 추구해온 과학 혁명이 지구의 종말을 앞당길 것만 같아 두렵다.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에 착륙했던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탐험에 앞서 몇 개월간 달과 환경이 비슷한 미국 서부 사막에서 훈련을 했다. 어느 날 우주비행사들은 훈련 중에 사막에 사는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연히 마주쳤다. 노인은 우주비행사들에게 물었다. 이 사막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달을 탐사하기 위해 곧 떠날 원정대의 대원들이라고 대답하자, 노인은 잠깐 침묵했다가 자신을 위해 부탁을 하나 들어 달라고 했다.
“우리 부족 사람들은 달에 신성한 정령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오. 그 정령들에게 우리 부족이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를 당신들이 전해 줄 수 있겠소?”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노인은 갑자기 자기 부족의 언어로 그 메시지에 대해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낯선 말을 외우라는 듯 되풀이해서 말했다. 우주비행사들은 노인이 들려주는 말을 외우려고 노력은 했지만, 너무 답답하여 메시지의 뜻이 무엇이냐고 노인에게 물었다. “그건 알려줄 수 없소. 우리 부족과 달의 정령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이라오.”
기지로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 그 부족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찾아냈다. 그들이 그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묻자, 통역자는 한참 동안 웃더니 원주민의 메시지를 이렇게 번역해 주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우리는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이 원주민의 메시지를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달 정복에 첫발을 떼려는 사람들을 가리켜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다’고 한 말을 ‘당신들의 행복을 훔치러 왔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달에 신성한 정령이 산다고 믿었던 시절이 지구 공동체를 끝장낼 수도 있는 자본주의와 결합한 첨단과학 문명의 오늘보다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