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이동엽 교사는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에서 최초로 개발, 보급한 중학교 생태전환교육 교과서 ‘기후변화와 우리’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첫 부분부터 ‘지구 구성 물질의 70%는 물이다’ 라는 오류가 눈에 들어왔다. 증기기관에 대해 설명을 하는 페이지엔 증기기관과 무관한 제철소로 보이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 교사는 구글 이미지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해당 사진이 중국 베이징에 있는 제철소 사진과 거의 같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교사는 해당 교과서를 전체적으로 훑으며 무려 34건의 지적 사항을 찾아냈다.
이 교사는 “국립대 교수가 집필책임자인 교과서에서 심각한 수준의 오류와 오개념이 곳곳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지구 구성 물질의 70%가 물이라면 지구는 액체여야 한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교과서 관련 당국에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시교육청 첫 개발 생태환경교과서에 34곳 오류”
충남 초등교 교사 구글 검색으로 엉뚱한 내용 잡아내
교육청·저자·출판사 “오류 인정”…정오표 긴급 게재
내년도 개정판 내기로…경남 인정 교과서도 대량 오류
이 교사는 다른 환경 교육 교과서도 점검하기 시작했다. 경남도교육청에서 2018년 교육감이 인정 심사한 중학교 ‘환경’ 교과서에서도 일본 중학교 사진이 우리 중학교로 소개되는 등 심각한 오류들을 찾아냈다. 교육 당국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충남의 초등학교 교사가 교과서 문제를 파고드는 이유가 궁금해 지난 6일 오후 9시쯤 세종시를 찾아가 이 교사를 만났다. 노트북PC를 들고 온 이 교사는 사진 원본을 찾아 직접 보여주면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교사는 “환경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교과서에서 너무 많은 오류가 발견돼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조희연 전 교육감 퇴진 직전 발표
이 교과서는 서울시교육청이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는 올해에 맞춰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최초로 개발한 생태전환교육 교과서다. 지난해 8월 2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서울시교육청은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환경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며 “생태전환교육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교과서 개발을 위한 정책 연구를 했고 연구 내용을 토대로 교과서를 준비했다. 국립대 교수 등으로 집필진을 구성했다. 이 교과서는 2024년 6월 교육과정 승인을 거치고 8월 서울시 교육감 승인 인정도서로 최종 승인돼 일부 중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희연 전 교육감이 생태전환교육에 열의를 보였다. 조 전 교육감은 이 교과서 발간에 대해 “시도교육청 최초로 개발한 생태전환교육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생태전환교육이 교육과정 내에서 체계적으로 실시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교과서 발간 보도자료가 나온 사흘 뒤 조 전 교육감은 해직교사 특혜 채용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서울교육청 “새 검토위원 구성” 이렇게 연구 개발까지 거치며 직접 개발한 교과서에서 무더기 오류가 나오자 서울시교육청은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민원인 문제 제기 부분을 검토하다가 전체 교과서를 훑어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자체 검토위원들을 꾸렸다”며 “한 달 넘게 인원을 투입해 검토한 결과 민원 주신 내용 이외에도 수정 사항이 보였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집필진에도 이 내용을 전달해 명확하게 오류로 나온 부분을 전공 대학교수 등 다른 검토위원에도 의뢰했다”면서 “명확히 오류로 나온 것은 정오표를 급하게 만들어 학교들에 공문으로 다 전달했고 이 교과서를 선택한 학교들이 볼 수 있도록 교과서 출판사 홈페이지에도 올렸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오표를 보면 폭염주의보 발표에 대해 기온을 기준으로 설명했던 기존 내용을 ‘하루 중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를 이틀 이상 예상할 때’로 바로잡았고 ‘지구 표면의 70%는 물이다’라고 정정했다. 중위도는 저위도로 수정했다. 이 교사가 지적한 사항 이외에도 교육청이 자체 검토 과정을 통해 찾아낸 오류들도 수정했다. ‘남아프리카’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바로잡은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긴급 수정한 내용만 18개에 이른다.
경남 교육청 관계자도 “저희도 인지하고 있고 출판사에도 전달이 됐다”며 “수정을 진행할 계획이며 내년에 출판될 교과서부터 수정 요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도교육청 인정 교과서 오류 지적과 관련해 출판사 측은 오류 제기 내용을 확인한 결과 이 교사의 지적이 맞다고 인정했다.
주요 필자도 “오류 인정” 교과서를 쓴 집필진도 오류를 인정한다. 서울시교육청 인정 교과서 필자인 국립대 교수 A씨는 “교사의 오류 지적 사항을 알고 있다”며 “수정 사항들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다시 교과서 심의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사진 오류들과 관련해 “자율 교육 과정의 교과서인데 이 정도의 시장성으로는 1·2위 출판사가 참여하지 않는다”며 “삽화나 사진, 디자인의 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진을 고를 때 해상도가 높은 사진을 찾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며 “저희가 수정 심의사항을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했고 교육청에서 논의해 조만간 최종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경남 교과서의 주요 집필자인 B씨는 “교과서 오류가 지적됐다는 얘기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며 “사진의 경우 저희가 직접 찾지는 않고 사진과 삽화에 대해 출판사에 의뢰하면 전문 작가가 찍거나 돈 주고 사온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이나 삽화에 대해선 출판사가 한 것이니 그쪽에서 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판사 “선생님 지적 내용에 깜짝 놀라” 해당 교과서들을 제작한 서울교과서측은 “교과서는 인정 번호를 득하기 위해 심사절차가 까다롭고 여러 차례 검토가 이뤄지며 교육청에서 심사진을 꾸린다”며 “이런 엄격한 절차를 거쳤는데도 어느 선생님이 지적한 오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류가 많으면 불합격 판정을 내는데, 왜 그런 부분들 지적이 안 나왔는지 아쉽다”고 했다.
교과서 사진들은 출판사가 고른다는 주장에 대해 “저희가 저자가 준 사진을 함부로 바꾸거나 하지 않는다”며 “저작권 문제도 있기 때문에 편집을 위해 내용을 주고받으며 검토를 한다”고 반박했다.
교과서 제작 과정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결국 이 문제는 저자도 책임이 있고, 출판사도 책임이 있고, 교육청 심의진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 한 권 심사에만 500만~800만원의 심사비가 들어가는 만큼 교육청이 주도하는 심사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문제가 제기된 이후 해결 과정에서도 혼란이 지속한다. 이 교사가 경남 교과서에 제기한 오류 지적에 대해 출판사 측은 “대표 저자에게 내용을 전달했으며 확인 결과 선생님 지적이 맞다”는 답변을 올렸다. 그러나 대표 집필자는 “출판사를 비롯해 어디에서도 오류 제기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 두고 벌어졌던 입시 혼란 교과서의 정확성 논란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제 오류 사건이 대표적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옳은 설명을 고르는 문제를 놓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정답으로 봤으나 서울고법은 2012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교과서 내용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정답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 때문에 수험생들 사이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계속되는 AI 교과서 논란도 학생 교육에 교과서가 얼마나 중대한 이슈인지를 말해준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번 같은 교과서 중대 오류가 학생들에게 큰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염려한다. 환경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교수는 “이처럼 오류가 많은 내용으로 학생을 가르쳤다니 참 아쉽다”는 의견을 밝혔다.
교과서 인정 과정의 허점 드러나 교과서 검정을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은 교과용 도서 검정이 기초조사→본심사→수정본 검토→견본 검수 절차로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본심사 절차에서 도서의 합격·불합격을 판정하고 수정·보완 권고서를 작성해 출원사에 통보하는 등 엄정한 절차를 거친다. 인정 교과서의 경우도 사용하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못지않은 엄격함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번 교과서 대량 오류로 허점이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교과서 전 부분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교육청 관계자는 “생태 교육에 대해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다 생긴 일”이라며 “내년도에 개정판을 만들 생각이며 교육청에서도 더 광범위하게 자체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