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58)의 연주에는 빈틈이 없었다.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알테오퍼 공연장.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지휘자 다니엘 하딩과 함께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연주한 무대였다.
조슈아 벨은 꼭 40년 전 4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데뷔하자마자 음반사 데카와 계약했고,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40장 넘는 음반을 냈고, 그래미상에 6번 후보로 지명됐으며 1회 수상했다. 에이버리 피셔 그랜트, 그라모폰 어워즈 수상자이며 영화 음악 연주, 방송 출연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10대 신동으로 시작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사례의 음악가다.
프랑크푸르트의 연주 직후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만난 벨은 “퍼즐을 맞추듯 40년을 보냈다”며 “연주가 20년 전보다도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조슈아 벨의 연주는 전성기라 할 만큼 정확하고 예리했다.
Q : 연주가 완벽했다. 연습 시간이 많은가.
A : “하루 3~4시간 정도다. 그보다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없애는 방법을 알게 돼 그 연습에 집중한다. 그러다 뭔가 클릭이 일어나는 순간이 오고, ‘아 20년 전보다 더 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조슈아 벨은 “최근 파가니니의 협주곡들을 녹음했다”고 했다.
Q : 만만치 않은 작품들이다.
A : “맞다. 요즘은 15살 영재들이 연주하는 곡이다. 그런데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10세 소녀가 ‘파가니니 1번을 한다’고 해서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그 애가 오페라에 대해 얼마나 알까?”
Q : 협주곡인데 오페라를 알아야 하나?
A : “이 곡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지만 사실상 로시니의 오페라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노래와 드라마를 떠올려야 한다.”
Q : 어려운 곡들은 10대 시절을 비롯해 어렸을 때 많이 연주했을 텐데.
A : “파가니니 협주곡은 10대에 처음 연주하고 한동안 하지 않다가 몇년 전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예나프스키 협주곡도 14세에 하고 다시는 안 했는데 이걸 다시 하고 싶다. 이제 음악에서 다른 것이 보인다.”
Q : 데뷔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A : “퍼즐을 풀듯이 살아왔다. 나는 독주, 실내악, 지휘 모두 하고 싶다. 그런데 일부 공연은 다른 공연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낸다. 그럼 그 공연을 더 여러번 할 줄 알아야 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한다면 집을 팔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
Q : 현실적인 이야기다.
A : “지금 당장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2년 후에도 계속 나를 찾아줄까? 그렇지 않다는 가정을 해야 한다.”
Q : 40년 전 카네기홀에서 데뷔하던 때 어떤 기분이었나.
A : “대단한 순간이었다. 많이 긴장했다. 그런데 사실 요즘, 그때보다 더 많이 긴장한다.”
Q : 왜 그럴까?
A : “너무 많이 알아서 그렇다. 특히 뭔가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Q : 수퍼스타가 됐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나?
A : “재능이나 노력만으로는 경력을 쌓을 수 없다. 나는 우연히 블루밍턴에서 태어났다. 그 해 아버지가 인디애나 대학의 심리학 교수가 됐기 때문이다. 음악과 관련 없는, 그냥 운이다. 적절한 부모, 매니저, 그리고 선생님이 있었다.”
Q : 인디애나에서 전설적인 스승, 요제프 깅골드를 12세에 만났다.
A : “그는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의 선생님들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이었다. 그는 옛 세계와 연결돼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옛날 스타일, 특히 왼손으로 현 짚는 것을 옛 방식으로 배웠다.”
조슈아 벨의 목표는 ‘새롭고 거대한 프로젝트의 지속’이다. 2023년 미국 작곡가 5명에게 땅·바람·공기·불·물을 주제로 작곡을 맡겨 뉴욕필과 협연했다. 가상 현실(VR) 개발에 참여해 ‘가상 바이올린’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조슈아 벨처럼 연주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2027년에는 작곡가 케빈 푸츠에게 그가 의뢰한 새 작품이 발표된다.
Q : 바쁜 일정이다. 쉴 때는 뭘 하나.
A : “한국 드라마에 시간을 너무 빼앗긴다. 아내가 하도 보길래 한 편만 본다고 앉았다가, ‘아 이건 나쁜 드라마야’하고 느꼈다.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Q : 제목이 뭐였나?
A : “영어로 ‘크래시 랜딩 온 유(crash landing on you, 사랑의 불시착)’다.”
“한국의 문화를 사랑한다”는 조슈아 벨은 10월 22일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다. 독일의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앨런 길버트와 함께 롯데콘서트홀에서 브람스의 협주곡을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