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집 문제만큼 중요하면서도 해결이 어려운 민생 현안이 또 있나 싶다. 저출생과 양극화, 수도권 집중의 주원인이다. 이재명 정부는 민생 안정을 중시한다. 정작 발등의 불인 부동산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느낌을 준다. 집값보다는 주가에 훨씬 관심이 많아 보인다. 지금 집값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정부 당국자가 아니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다. 서울 아파트값이 6년9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오른 지난달 말,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수많은 경제 현안을 얘기하면서 부동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재정 풀고 금리 내리면 집값 불안
대출규제는 단기 대책, 공급도 부족
대통령 자신만만, 시장은 반신반의
주가 자랑 전에 부동산 걱정해야
지난 3일 기자회견 마지막 문답에서야 구체적 언급이 처음 나왔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묶은) 이번 대출 규제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책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별일 아닌 듯 얘기해 정말 자신이 있는 건지,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그러는 건지 헷갈린다. 아니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지. 자신감이 지나치면 오판하기 쉽다. 시장은 반신반의한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 때를 기억한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큰소리쳤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이 임기 내내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안 했던 것 같다.
이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에 발을 깊게 담그지 않는 건 고도의 통치 전략으로 보인다. 부동산이나 개헌, 상속세처럼 까다롭거나 갈등을 일으켜 블랙홀이 될 수 있는 이슈는 시간을 갖고 풀어가려는 듯하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있고, 인기를 얻는 이슈에 집중한다. 추경, 증시 부양, 특검, 검찰 개혁 등이 해당한다. 국민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지지율이 60%대 중반에 달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집값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처럼 대통령실이 그립을 잡고 가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섣부르게 덤벼들기보다 신중하게 대응하는 건 이해할 만하다. 대책의 밑천을 드러내지 않고, 어느 정도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부동산은 대통령이 진두지휘해도 쉽지 않은 과제다. 경제는 심리다. 정부가 한 발짝 떨어져 있으면 집값 상승을 방치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정책 효과가 반감된다. 시장에 끌려다니게 된다.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민심도 달라진다. ‘진보가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고약한 통념을 깨는 것도 과제다. 서울 집값은 노무현 정부 때 80%, 문재인 정부 때 119% 뛰었다. 이번에도 여건이 좋지 않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 내년 서울 입주 예정은 2만4000가구다. 올해의 절반이다. 이제부터 공급을 늘리기로 해도 실제 집이 지어지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새 정부 경제 정책은 돈을 돌게 해 활로를 뚫는 방식이다. 민간에 돈이 막혀있으니 재정을 동원하는 건 불가피하다. 한은도 경기 부양을 위해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돈이 풀린다. 그러면 주가만 오르는 게 아니다. 물가가 들썩이고, 집값도 오른다. 통화량이 1% 증가하면 1년 안에 집값이 0.9% 상승한다(한국개발연구원, KDI). 시장은 그걸 꿰뚫고 먼저 움직인다. 대출 규제는 어디까지나 단기 대책이다. 2019년 15억원 이상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었다. 집값이 주춤했으나 6개월 후 다시 치솟았다.
새 정부는 출범 이후 주가가 오르자 한껏 고무돼 있다. 이 대통령은 “금융시장이 정상화하면서 (부동산의) 대체 투자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으로 흘러갈 자금의 물꼬를 주식시장으로 돌리겠단 뜻이다. 취지는 좋지만, 엄밀히 말해 부동산과 주식은 대체 관계가 아니다. 경기·통화량에 따라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더 큰 문제는 요새처럼 실물경제가 바닥을 기는데, 주가와 부동산만 오르는 경우다. 그게 바로 버블이다.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는 버블은 터지게 마련이다.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올해 잠재성장률이 1.9%까지 떨어질 정도(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로 좋지 않다. 예측 불허의 트럼프 정책에 자산 버블이 겹치면 자칫 장기 침체가 닥칠 수 있다.
이 와중에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은 신뢰를 떨어뜨린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서울 집값 상승은 윤석열 정권과 오세훈 서울시 부동산 정책의 결과”라고 말했다. 김민석 총리도 비슷하게 얘기했다. 문재인·윤석열 정부가 즐겨 쓰던 ‘전 정부 탓’이다. 국민은 누구 책임인지 가려 달라는 게 아니다. 이제 막 출범한 정부에 부동산 책임을 물을 생각도 없다. 집값이 불안하니 정부가 적극 나서 수습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시장은 난리가 났는데, 정부와 여당이 책임을 미루거나 딴 세상에서 관전평 하듯 해선 안 된다. 주가를 자랑하기 전에 부동산을 걱정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 여부는 경제에 달려 있다. 특히 부동산에 실패하면 다른 걸 아무리 잘해 봐야 소용없다. 이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