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군대가 무기 경쟁을 하듯 삼성과 애플은 헬스케어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이들 회사 제품은 점점 더 의료기기에 가까워지고 있죠.”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Xealth)의 최고경영자(CEO) 겸 창업자인 마이클 멕쉐는 지난 9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헬스케어 진출 기업은) 결국 병원 시스템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젤스는 삼성과 병원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삼성전자는 젤스 인수를 발표했고, 이틀 뒤 멕쉐 CEO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2025’ 무대에 올라 삼성과 디지털 헬스케어 협력안을 소개했다. 행사 직후 멕쉐 CEO와 만났다.
2016년 설립된 젤스는 미국 500여 개 병원과 당뇨·임신·수술 관련 70여 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을 파트너로 보유했다. 헬스케어 솔루션을 통해 수집된 환자의 건강 상태 정보를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조회하고, 맞춤 건강 솔루션을 추천할 수 있도록 젤스가 이들을 연결한다. 이번 인수를 통해 삼성전자는 모바일 기기로 수집한 사용자 건강 데이터를 병원과 연계해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멕쉐 CEO는 “삼성은 모바일 기기뿐 아니라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에도 헬스케어 기능을 넣어 집안 전체가 건강을 지원하는 환경이 되길 원한다”라며 “삼성 기기로 수집된 환자의 심박 수, 수면 상태 같은 데이터를 의사가 진단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젤스의 만남은 11개월 전 시작됐다. 멕쉐 CEO는 “삼성은 병원 시스템을 통합하는 연결고리가 필요했다”라며 “내부 팀을 꾸려서 새로 시작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적합한 회사를 인수하는 쪽으로 결정한 듯하다”라고 말했다. 우선 삼성은 내부의 기업형 벤처 캐피털(CVC)인 ‘삼성넥스트’를 통해 젤스에 투자하면서 젤스의 기술력을 분석하고 인수 적합성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멕쉐는 설명했다.
멕쉐 CEO는 “인수의향서를 체결하고 법률적인 준비를 시작한 건 4개월 전”이라며 “최종 합의는 ‘오늘 안에 무조건 끝내자’는 마음으로 논의를 거듭한 끝에 6일 자정이 다 돼서야 서명하고 끝났다”고 말했다. 젤스의 주요 임원진은 다음날 새벽 6시에 시애틀에서 비행기를 타고 언팩이 열리는 뉴욕에 도착했고, 행사 당일 DX(디바이스 경험) 부문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노태문 MX(모바일경험)사업부장(사장)과도 만났다. 멕쉐 CEO는 “노 사장은 헬스케어 분야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라며 “젤스가 병원 내 데이터를 모아주는 허브 역할을 하길 원하더라”고 전했다.
젤스가 여섯 번째 창업한 회사라는 멕쉐 CEO는 2010년대초 안드로이드 키보드 앱 스와이프 개발사 CEO를 맡던 때부터 삼성과 인연이 있다. 그때 이후 삼성전자와 미팅을 위해 서울·수원을 12번쯤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도 삼성은 스와이프의 투자자였고, 삼성 기기에 우리의 기술이 탑재됐다”라며 “젤스는 스타트업으로서 글로벌 확장을 원했고, 삼성은 우리에게 그 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이어서 “삼성 역시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이 헬스케어 생태계를 바꾸는 데 젤스가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연내 미국에서 인공지능(AI) 헬스코치 베타버전을 출시할 계획이다. 기존 ‘삼성 헬스’ 앱에서 AI가 의사의 운동 처방과 약 복용법 등을 따를 수 있도록 챗봇 형태로 안내하는 서비스다. 헬스코치를 의료기관 시스템과의 연계하는 데 젤스를 활용하겠단 방침이다. 다만 국내에서 원격의료 등 관련 규제의 장벽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선보이려면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박헌수 MX사업부 헬스케어 팀장은 “한국 내 서비스 출시 시기는 미정”이라며 “현재 목표는 일단 의료체계와 웨어러블 기기를 연결하는 환경을 미국 시장에서부터 구축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