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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탈출한 유영철 폭주…사창가서 삼킨 '땅콩 10알' 정체

중앙일보

2025.07.14 13:00 2025.07.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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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6일 기동수사대 건물에서 탈출한 유영철은 영등포시장의 한 여관에 투숙한 뒤 영등포 사창가를 배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뉴시스
2004년 7월 16일 새벽 4시.
기동수사대(광역수사대 전신, 이하 ‘기수대’) 건물을 탈출한 유영철이 신변 정리를 마치고 향한 곳은 영등포 사창가로 전해진다. 영등포 로터리에서 문래동으로 넘어가는 대로변에는 낡은 철공소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안쪽에 위치한 비좁은 골목길이다. 건물 1층마다 유리창 너머 성매매 종사자들이 손짓하는 그곳에서 유영철은 비를 맞으며 또 다른 희생자를 물색했던 것이다.

범행 전의 스트레스는 연쇄살인자의 살인을 촉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17시간 밤샘 조사를 받은 데다, 한 번 덜미를 잡히면 지옥행이라는 수배자 신분이 된 그다. 무엇보다 더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2003년 서남부 사건에서 9명을 살해한 뒤 4개월간 종적을 감췄지만 이듬해 3월부터 7월까지 출장 마사지사 11명을 죽였다. 한 달에 한 번꼴이었던 살인 행각은 막판 들어 나흘마다 벌어졌다. 소위 말하는 냉각기의 붕괴다. 7월 13일 살인을 저지른 그는 살욕을 못 참고 이튿날 출장 마사지사를 신촌오거리로 또 한 번 불러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천운도 그런 천운이 없을 테지만 유영철은 서울 도심을 다시 활보하게 됐다.

“유영철이 살인을 계획하고 성매매를 위한 쪽방으로 들어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아마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역이었던 오피스텔과 달리, 거기선 여자의 비명 한 번에 포주들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김상중 형사는 회고했다.

이날 기수대 형사3계 2반은 김상중 형사의 쏘렌토와 권영준 형사의 마티즈로 나눈 2개 조로 영등포 일대를 돌며 유영철을 수색 중이었다. 오전 10시를 갓 넘긴 때로 대로변에는 행인들로 가득했다. 외근을 나온 직장인들이며 주부들, 천막을 치고 장사 중인 행상인들이 뒤섞여 있다. 거기다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까지 더해져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마티즈 조는 1차로에서 최대한 연석에 가깝게 차를 몰면서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은 김준철, 민관덕 형사가 빠르게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었지만 단숨에 속도를 높여 로터리를 지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범인 검거를 눈앞에 둔 유사시에 과속이나 신호위반은 수사의 상도라고 할 수 있지만, 유력한 목격 정보도 없는 현재로선 서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 민관덕 형사가 말했다.

“형님, 저기요.”
“뭐?” 선배들은 막내의 말에 심드렁했다.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있는 저 새끼, 계란으로 얼굴 문대고 있는데… 유영철 아닙니까.”

2003년 11월 18일 혜화동 살인사건 현장의 CCTV에 찍혔던 유영철. 중앙포토
권영준 형사가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았다. 막내의 말대로 검은 모자를 눌러 쓴 사내가 눈가에 계란을 대고 있다. 한쪽 어깨엔 배낭을 메고 남은 손으로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다. 형사들이 일제히 차에서 뛰쳐나가 사내를 에워싸고는 모자를 뒤집어깠다. 유영철이었다.

낭보를 전해 들은 김상중 형사가 쏘렌토를 몰고 오자 형사들은 유영철을 뒷좌석에 밀어넣었다. 그때 유영철은 기이할 정도로 격분하며 저항했는데, 자신을 붙잡은 민관덕 형사가 순경인 주제에 욕을 하면서 뺨을 쳤다는 게 이유였다.

“진정해라, 여기선 내가 대장이다. 나와 얘기하면 된다.”

김상중 형사는 기수대로 가다가 한강이 내다보이는 여의도 길가에 차를 세웠다. 직접 신문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날 형사1계는 ‘내가 서남부 사건의 범인’이라는 유영철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추가 진술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했다. 서남부 사건 수사본부 일원이었던 김상중 형사는 몇 개의 질문으로 유영철이 진범인지 아닌지 판별할 자신이 있었다.

“야, 유영철이,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 봐. 너 범인 아니잖아?”

고참의 갑작스러운 말에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얼른 형사1계에 신병을 넘기고 좀 쉬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후배들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서남부 사건 수사했던 형사야, 인마. 어제 조사실에서 나온 얘기 다 들었는데 네가 죽인 거 아니더만. 왜 자꾸 헛소리를 늘어놔서 형사들만 피곤하게 해?”

대수롭지 않은 도발이었지만 유영철은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다. 수면제를 먹었느냐고 추궁하자 그건 아니라면서도 그 대신 ‘땅콩’을 10알 정도 삼켰다고 했다.

“수사했다는 인간이 날 봐도 모르네. 서남부 사건 뭐가 궁금한데. 다 물어봐, 이 새끼야. 내가 다 말해 줄게.”

유영철이 삼켰다는 땅콩 10알, 2000년대 성매매 여성들이 자주 사 먹던 그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또 내장이 사라진 사체에 대해 묻자, 충격적인 진술을 늘어놓는데. 한국 최악의 살인마. 유영철의 마지막 이야기,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8501
〈강력계 25시〉 유영철의 이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형사 12명 있는데 걸어나갔다…한손 수갑 찬 유영철 도주극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4469

유영철, 경찰서 탈출했었다…"女 있어요?" 사창가 충격 행적 〈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6250


안덕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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