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탑재된 음성 비서부터 스마트 워치의 헬스 트래킹 AI, 스마트 안경의 번역 기능까지, AI는 점차 사용자 경험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바일 AI 기기는 지금까지 주로 기존의 하드웨어 틀에 AI를 얹은 방식이었을 뿐,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의 본질에 맞춰 하드웨어 자체를 새롭게 설계한 시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픈 AI와 애플 디자인의 아버지 조니 아이브의 협업은 AI 하드웨어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오픈 AI는 조니 아이브의 하드웨어 디자인 회사 ‘io’를 6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AI 기반 디바이스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들이 만들고자 하는 기기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혹은 AR 안경처럼 기존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범주의 기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픈 AI는 AI 기반 디바이스를 ‘세 번째 핵심 디바이스’라고 정의하며, 맥북과 아이폰 이후 새로운 컴퓨팅 패러다임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화면이 없는 주머니 속 디바이스, 음성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춰 반응하는 지능형 기기, 사용자가 무언가를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기계. 이런 묘사는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기기와도 다릅니다. 조니 아이브는 이 프로젝트를 ‘새로운 디자인 운동’이라고 표현하며,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정의할 시도라고 평가합니다. 출시 시점은 2026년 말로 예정돼 있으며, 현재까지 정보만으로도 이 기기가 단순한 AI 하드웨어가 아닌,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려는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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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하드웨어…스마트폰 이후의 경험 제공
그런 의미에서 오픈 AI와 아이브의 협업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기기의 탄생을 예고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I를 중심으로 설계된 새로운 폼팩터(기기 모양)의 등장은 우리가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건 아닙니다. 이미 틴에이지엔지니어링과 래빗(Rabbit Inc)이 함께 만든 ‘래빗 R1’이라는 제품을 통해 AI 기반 전용기기를 구현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있었습니다. 래빗 R1은 작고 단순한 주머니 크기의 디바이스로, 기존 스마트폰처럼 앱 기반 UI를 활용하기보다는 음성과 간단한 조작만으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기기는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가 결합한 소형 단말기로, AI를 통해 날씨를 묻고, 번역하며, 사용자의 질문에 응답합니다.
화면은 작고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지만, 그 목적은 명확합니다. 바로 AI 전용기기라는 ‘스마트폰 이후’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래빗 R1은 현재 기능적 완성도나 연결성 측면에서 아쉬운 평가도 받고 있지만, ‘AI를 위한 기기’를 만든다는 철학적 시도 자체는 시장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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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의 소통 방식 변화…일상 속 AI 동반자 등장
이제 우리는 AI 전용기기에 어떤 인공지능이 들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이러한 기기는 온디바이스 AI와 클라우드 기반 AI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구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온디바이스 AI는 사용자의 음성·제스처·시선·표정 등 실시간 데이터를 기기 내부에서 빠르게 분석하고 반응함으로써, 기기의 응답 속도를 극대화하고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반면 클라우드 AI는 보다 복잡한 계산, 대규모 데이터 분석, 외부 시스템 연동을 담당하며, 오픈 AI와 같은 고성능 모델이 지속해서 백업하는 형태로 작동합니다. 이처럼 역할을 나누는 구조는 이미 애플의 시리 개선 전략이나 삼성의 갤럭시 AI 전략에서도 적용되고 있으며, 향후 대부분의 AI 디바이스가 이 방식을 따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 AI 기반 폼팩터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손에 들거나 신체에 부착해 사용자의 일정을 관리하고, 메모를 기록하며, 번역이나 정보 검색을 지원하는 퍼스널 AI 어시스턴트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에 설치하면 집 안의 상황을 파악하고, 스마트홈 장비와 연동돼 작동하는 인식형 IoT 허브 형태로도 진화할 수 있습니다. 차량에 탑재돼 운전자의 컨디션을 감지하고 도로 상황을 분석하는 자동차 내 AI 동반자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AI와 소통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기존에는 AI와 텍스트 기반으로 소통했지만, 음성 인식 기술의 발달로 스크린 없는 AI 기기에서도 충분히 직관적인 대화형 상호작용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기들은 굳이 디스플레이를 탑재하지 않고 귀걸이·팔찌·브로치·소형 디바이스·차량 내부 센서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곧 AI 기기가 특별한 외형이나 눈에 띄는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공간과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채 우리 곁에 놓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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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에 최적화된 새로운 디바이스
우리는 지금까지 스마트폰이라는 하나의 기기에 많은 기능을 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하나의 만능 기기보다는, 맥락에 따라 최적의 기능을 제공하는 다기능 기기들이 조용히 보조하는 형태가 일반화될 수 있습니다. 결국 AI 기반 기기의 핵심은 기존 하드웨어를 AI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의 삶에 최적화된 새로운 디바이스를 설계하는 데에 있습니다.
AI 기기는 스마트폰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스마트폰의 한계를 보완하고 우리가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특히 가정, 자동차, 사무 공간, 교육 현장 등 다양한 일상 공간에서 AI 기기는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우리의 삶 전체를 더 효율적이고 인간 중심적으로 바꿔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등장할 AI 기반 기기는 단지 기술 혁신이 아닌, 우리가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문화적 변화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