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 국민 대상 '민생회복 소비쿠폰' 발행에 속도를 내면서 전체 예산 가운데 일부를 분담해야 하는 지자체에 비상이 걸렸다. 세수(稅收)감소 등으로 살림살이가 빠듯한 상황에서 수백억 규모의 예산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결국 지방채 발행이나 기금 활용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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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기금도 빚"
15일 각 지자체와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15만 원에서 최대 55만원을 지원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오는 21일부터 지급된다. 전체 사업비는 13조 9000억원으로, 이 중 1조 7000억 원이 지방비다. 정부가 90%, 자치단체가 10%(서울은 25%) 부담하는 구조다. 이에 각 시도는 수백억원씩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가운데 대전시가 나눠 줄 소비쿠폰 예산은 총 4028억원이다. 국비가 3600억원이고, 나머지 428억원은 대전시와 5개 자치구가 50%씩 나눠 부담하기로 했다. 대전시는 214억원을 통합재정안정화기금(기금)을 활용하거나 당장 급하지 않은 다른 사업비를 축소해 충당하기로 했다. 대전 자치구 가운데 서구는 기금과 유보금· 예비비 등을 총동원해 68억원을 만들기로 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기금은 재난 상황 등 각각 사용 목적이 있는데 소비쿠폰은 이런 사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기금을 사용하면 2년 뒤에 채워 넣어야 하므로 사실상 빚을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당수 자치단체는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세종시는 전체 소비쿠폰 예산 725억원 가운데 73억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한 세수 감소 때문에 이 예산 마련도 쉽지 않다고 한다. 세종시 관계자는 “기금을 쓸지 지방채를 발행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라며 “소비쿠폰 지급은 빚을 내서 국민에게 용돈 주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충남도 역시 재원 마련 대책을 고민중이다. 충남에 나눠줄 소비쿠폰 예산은 약 4250억원이다. 이 가운데 충남도는 지방비 분담액 424억원 정도를 시·군과 5대 5로 나눠 내기로 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이미 지난 5월에 추경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에 당장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라며 “추경 편성은 오는 9월께나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에 충남도는 소비쿠폰를 우선 국비로만 나눠 주기로 했다.
대전과 세종, 충남은 각각 올해 지방채 발행 한도액 2819억 원, 745억 원, 2498억 원을 거의 소진한 상태다. 최근 3년 새 지방교부세가 대폭 삭감된 데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체 세수도 감소한 가운데,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등 수년 전부터 이어져 온 지역 현안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방채 발행이 불가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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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기금도 없어 막막"
충북도도 전체 소비쿠폰 예산(약 4500억원)가운데 도와 시군이 부담할 450억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충북도 관계자는 “기금이나 지방채 등을 활용하는 방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전체 소비쿠폰 예산 4411억원 가운데 438억원을 도와 시군이 50%씩 부담하기로 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지난 5월 이미 추경 예산을 편성한 상태라 당장 마련할 돈이 없다”라며 강원은 기금도 부족해 기채나 사업비 축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강원도는 소비쿠폰을 국비로 우선 지급할 방침이다.
기초 자치단체와 예산 분담 비율을 놓고 갈등하는 광역단체도 있다. 울산광역시는 자치구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치구가 20%만 부담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시군과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인구소멸지역으로 지정된 연천·가평군은 7대3으로 비율을 조정했다. 반면 고양시 등 인구가 많지만,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지자체는 경기도가 70~100%까지 부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