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KBS1 '아침마당' 화요초대석에는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도나와 소피로 모녀 호흡을 맞춘 배우 최정원과 에프엑스 루나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엄지인 아나운서는 "최정원씨가 존재감 어마어마하다. 대기실이 아침에 조용하다. 최정원씨가 등장하는 순간 에너지가 느껴지더라"라고 놀랐고, 루나는 "저는 깜짝 놀란다. 항상 기복 없다. 하이텐션이 굉장히 선을 넘지않고 이 텐션 항상 유지하는데 어렵지 않나. 저는 이런 부분을 자기관리 왕이다 라고 한다. 방송에서만 아니라 공연할때 연습할때 어떤공간에서도 항상 긍정에너지, 해피바이러스. 이 에너지 덕에 후배들이 항상 본받게 되는거 같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최정원씨 열정 뮤지컬 팬이면 모르는사람 없는데 루나씨마저 엄마의 열정에 호흡을 맞춰줄줄 몰랐다"고 감탄했고, 최정원은 "친구들하고 부른 노래고 루나는 커튼콜때 뒤에서 저희 응원해주는것만 하다가 함께 호흡 처음 맞췄는데 20년뒤에 분명 제 역할 도나 하게되지 않을까 생각 하게 된다"고 극찬했다.
이에 김재원 아나운서는 "20년동안은 최정원씨가 하겠다는거죠?"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최정원은 "그래서 저는 관리 아주 잘할거다. 기네스북 올라보죠. 70대에도 할수있는거 아니냐. 이대로 계속늙지 않고. 근데 정말 제가 나이를 잊고 살고있는게 계속 체력 좋아지더라. 춤도 연륜에 따라 예전엔 '강'만 있었으면 요즘엔 강약 조절하다 보니 지난시즌 '시카고' 할때 가장 편하게 공연했던 것 가�n. 이번 '맘마미아' 하면서도 컨디션 매일 좋고. 그런 생각 들더라. 내가 매일 노는곳이 놀이터인데 놀이터에서 어떻게 체력이 달리겠냐. 공연있는날 컨디션 훨씬 좋아지고 제 주제가가 '댄싱퀸'이다. 이 가사가 저를 위해 태어난것 같다. '신나게 춤춰봐 인생은 멋진거야, 기억해 너는 최고의 댄싱퀸이야 정원아' 이걸 계속 반복하는것 같다. 계속 딸한테 말한다. 내 비명에 꼭 이걸 비석에 새겨달라고"라고 말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시카고는 하이힐신고 춤추고 그래야해서 죄송한 표현이지만 이 연세에 감당하기 어려운 역할이지 않냐"라고 조심스레 물었고, 최정원은 "근데 이 연세에 된다는걸 알고 후배들도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거다. 60이 돼도 옆돌기 하고 춤추고 킥차고 할수있단걸 보여준다. 물론 외국컴퍼니에서 최정원은 이제 못쓰겠다하면 모를까 이번 시즌에 제가 다음까지만 하겠다 했더니 '너는 70까지 해야된다'라고 해줬다"며 "저는 천직인것 같다.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됐고 그게 직업이 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 와중에도 제가 좋아하기때문에 연습도 남들보다 조금더 많이 하고 20대부터 끊임없이 같은 시간대 운동한게 30년 지나니 요즘 무대에서 발휘되는것 같다"고 체력의 비법을 전했다.
특히 루나는 지난 2019년에도 소피 역할로 최정원과 호흡을 맞췄던 바. 또 한번 '맘마미아'에 출연할 수 있었던 건 최정원의 역할이 컸다고. 최정원은 "최근 연극 올린 '햄릿'에서 (루나가) 오필리어를 했다. 제가 어렸을때는 햄릿에서 꼭 오필리아 해야겟다는 꿈 가지고 있었다. 오필리아가 갖고있는 감정, 대사도 거의 외울정도로 알고있었는데 루나가 오필리어를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고민했던 내가 무대 오르면 이렇게 할거라는것보다도 훨씬 입체적으로 공연하는 모습 보면서 루나랑 꼭 다시한번 공연하고 싶단 생각에 그날 공연 끝나고 대표님에게 '저 소원이 있다. 루나와 함께 맘마미아 도나와 소피로 한번만 더 만나게 해줄수 있냐'고 했다"며 "최근 연습하면서 전세계에서 제가 가장 완벽한 소피라고 자랑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루나는 "감사하다"며 눈물흘렸고, 최정원은 "연기를 그냥 잘하는게 아니라 마치 루나가 그런걸 다 경험한. 소피 인생 살아봤던것처럼 무대에서 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제가 너무 자극되고 연기가 핑퐁일수밖에 없지 않냐. 어떻게 공 주냐에 따라 방어하기도 돌려주기도 한다. 호흡이 우리 딸보다 잘맞는다"고 찬사를 보냈다.
루나는 '맘마미아' 오디션 당시 상황을 묻자 "제가 17살에 버킷리스트 작성했는데 내 인생에 꼭한번 해봐야하는 작품 1위가 '맘마미아'였다. 20살 되자마자 오디션 많이 봤는데 항상 떨어졌다. 2019년에 소피가 됐을때 이게 돼야하니까 그리스 사람들 어떻게 입는지 피부 어떻고 머리 어떤색으로 해야 소피같을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많이 공부해서 소피 분장을 다 하고 오디션장에 갔다. 그때 경쟁률이 250:1이었던걸로 알고있다. 많은 분들이 오디션 보려 오셨다. 그날은 딱 들어가는데 '나 소피다' 이런 확신 들었고 그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다. 오죽하면 외국 연출분이 오신단걸 알고 영어대사도 준비해서 갔다. 한국 대본이 미국 유머랑 다르니까 외국 연출자분들이 이해하시기 편하게 개그 코드 읽는 부분은 영어로 해서 많이 웃어주시고 부족했는데도 예쁘게 봐주셨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사진]OSEN DB.
이후 두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최정원은 어머니로부터 긍정 에너지를 많이 배웠다며 "엄마한테 '왜 살이 까매?'라고 물으면 '정원이는 웃는게 너무 예뻐. 까마니까 이가 하얗잖아' 그래서 제가 친구들보고 웃게 되니까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되더라. 웃는 습관도 엄마 덕이다. 항상 엄마가 감사함을 많이 알려주셨다. 우리 집이 학교랑 30분 거리인데도 네 다리가 육상선수가 될수 있었던건 집이 멀어서야,라고 해주셨다. 제가 오랫동안 활동할수있는 것도 튼튼한 다리,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주신덕"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를 하려고 할때도 "그때 제가 고2때였다. 사실 대학도 준비할때인데 '네가 뭘 한다면 분명 잘할거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루나의 어머니는 소프라노 출신이라고. 그는 "저희 어머니는 성악 전공이시고 소프라노다. 저희 아버지도 교회에서 성가 지휘 하시고 저희 친오빠도 작곡가도 쌍둥이 언니도 성악가"라며 음악DNA를 자랑했다. 하지만 IMF때 경제가 힘들어져 성악을 접고 외할머니의 순댓국 장사를 도왔다고. 루나는 "장사를 오래하다보면 가스를 많이 마시게 된다. 그러면서 만성 기관지염 달고 사시고 순대 만지면 손톱에 까맣게 때가 낀다. 저는 어릴때 그게 참 싫더라.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손이 예쁘게 못하지? 어린 마음에 그랬는데 나중에 6학년, 14살이 되니까 우리 엄마가 안쓰럽더라. 노래 잘하고 아름답고 밝으신 분인데 우리엄마 고생 많네"라고 털어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어 "그래서 악착같이 연습했다. 14살부터 남들 놀때 쉬는날없이 연습했다. 우리 엄마 아버지 고생 덜하시고 편하게 꿈 이루시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게 제 큰 원동력 됐고 그래서 제가 잘 성장할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다 모셨다. 다같이 살면서 외할머니 먼저 하늘나라 가시고 이제 친할머니 함께 살고 계신다. 21살때부터 꼭 약속 드렸다. 1년에 한번 꼭 가족여행, 부모님이라도 보내드리겠다 해서 계속 약속 지키고 있다"고 말해 뭉클함을 안겼다.
그런가 하면 최정원은 바쁜 자신을 대신해 딸을 키워준 어머니를 향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최정원은 "제가 임신 초기에 하혈 많이 했다. 어떤 병원에서는 아이가 오히려 위험한 상태다, (사산) 된것같다 그러면서 극한 말도 해줬다. 그럼에도 제가 계속 입덧하고 하니까 다른 병원 갔더니 아이가 살아있다더라. 내가 그때 31살밖에 안됐으니까. 아이를 위해 공부해야겠다. 나는 임신하면 뚝딱 태어나응줄 알았는데 많이 움직이는 직업 가져서 그런지 하혈도 많고 아이가 지워졌다 그럴때도 있어서 태교 많이 했다. 그때부터 저는 제가 결혼하고 6개월만에 아이 가졌으니 결혼한 6개월 빼고는 최근까지 친정엄마랑 함께 살았다. 그래서 임신하고 나서 엄마가 저희 집 와서 저 케어해주면서 같이 살고, 아이가 물에서 태어났지 않냐. 태어난 다음에는 20대 넘을때까지 친정엄마가 집에 계시면서 '넌 공연해 내가 키울테니까'하면서 외할머니의 긍정의 힘으로 아이도 키웠다"고 설명했다.
엄지인 아나운서는 "그시기에 센세이션 했던게 수중분만으로 아이 낳는걸 많은분이 보셨다"고 수중분만 중계를 언급했다. 최정원은 "어떻게 그런 결심 했냐"고 묻자 "우선은 위험한 상황이 있어서 스스로 분만법, 태교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할수있는걸 라마즈 호흡법이나 아이가 어떻게 태어날때 두개골이 몇번 겹치면서 태어나는지 양수가 왜 태어나는지 공부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KBS '도전 지구 탐험'에서 1998년도쯤 저에게 뉴욕 가서 6개월 코스로 탭댄스를 수료할수있는지 도전해보겠냐 해서 뉴욕가서 한달 살아본적 있다. 그 과정 거칠때 가장 친했더 '캣츠' 공연하던 배우가 있었다. 정말 예쁘고 몸이 탄력있고 예뻤다. 어느날 6개월된 아이를 안고 와서 앉혀놓고 웜업하더라. 자기 아기라더라. 누가 봐도 애 낳은지 6개월된 사람같지 않았다. 진짜 네가 낳았냐 했더니 자긴 수중분만 했는데 여기 뮤지컬 배우는 많이 해. 회복도 빠르고 내몸에도 아이한테 좋다고 했던 기억 나서 나도 뉴욕가서 수중분만 해야겠다 생각 하던 차에 SBS에서 연락왔다. 자연분만하는 산모가 많이 없어서 자연분만 하는걸 관찰해서 촬영해도 되겠냐 해서 저는 수중분만 하고싶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독일, 일본, 스위스에서 수중분만 촬영 해왔다더라. 한국에 권위있는 선생님과 함께 해보자고 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사진]OSEN DB.
또 "딸과 영상 같이 봤냐"는 질문에 그는 "안보여줬다. 아이가 처음으로 생리 시작하는날 설명해주고싶었다. 이제부터 아이를 가질수있는 여자다 이걸 알려주면서 교육적으로 그때 얘기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중1때 아이가 첫 생리 시작한 어느날 할머니랑 저랑 다 앉혀놓고 시청했다. 방송국에서 방송 나오지 않았지만 1시간 반동안 집중적으로 촬영한걸 예쁘게 편집해주셨다. 가족끼리 보라고. 그래서 디테일한 영상이 있었다. 딸이 영상 보고 끝부분에 계속 울길래 '엄마가 널 이렇게 낳았어'했더니 외할머니가 한시간 넘게 자기가 태어나고 엄마가 날 안고 있고 카메라가 자길 비추고 있어도 할머니는 엄마만 바라보고 쓰다듬고 있었다더라. 그 모습에 눈물 터진거다. 저는 아기만 쳐다보는데. 그걸 보고 딸이 할머니 안더니 할머니한테 사랑한다고 했다. 저는 몇번 봤는데 그 모습을 못봤다. 할머니한테 자라서 할머니한테 시선을 계속 주고있더라. 어머니는 저를 낳았지 않냐. 낳을때 고통 아니까 숨을 계속 같이 쉬고 카메라가 비추고 있으니 말은 못해도 참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며 눈물흘렸다.
그랬던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잠든채로 세상을 떠났다고. 최정원은 "전날 어머니가 요즘 고스톱 게임하는데 핸드폰이 잘 안된다고 해서 사드린지 5년정도 돼서 '진짜 바꿔줄게' 하고 전날 새폰으로 바꿔드렸다. 그날 얼굴도 다 보고 식사 하는것도 봤는데 다음날 저는 '시카고' 창원 공연 있어서 창원에 와있는데 연락을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너무 건강하셨으니까"라고 털어놨다.
생전 어머니는 "내가 혹시 죽어도 너는 공연있는날 공연해라. 내가 공연 보려고 그런거니까"라고 말했지만, 최정원은 평생 같이 살았던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갑자기 몸이 마비된것 같더라"라며 '시카고' 공연에 불참했던 상황을 전했다. 다만 "다음날 '하데스타운'에서는 대체해줄 배우가 없었다. 다들 공연중이라. 그래서 서울에서 하루 장례 하고 입관하는 날 못보고 다시 부산에 와서 두번의 공연을 하는데 너무 울어서 목이 새벽까지 안나왔다. 근데 공연하는데 너무 몸에 무슨 새가 된것처럼 가벼워지면서 공연이 너무 잘되더라. 그러고 공연 잘 마쳤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이광기는 "어머니가 함께해주신것"이라고 말했고, 최정원은 "그날 제가 느꼈던 무대위에서 그 감각을 아직도 생각난다. 몸이 너무 가볍고 그날 이후로 조금 더 컨디션 좋아진것 같고 저는 안울었는데 그날 소식 접한 연주팀과 상대배우들이 제가 너무 꿋꿋하게 눈물 많은데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공연하는걸 보고 격려해주셨다"고 말해 뭉클함을 전했다.
이를 들은 김재원 아나운서는 "두분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맘마미아가 더 재밌을것 같다"며 "어떤 분들이 어떻게 가시면 좋겠냐. 엄마에게 딸에게 좋은 선물 될것 같다"고 물었고, 최정원은 "(엄마와 딸도) 아주 좋고 저는 친구들도 좋을 것 같다. 모녀 얘기를 많이 풀긴 하지만 친구들 우정, 삼총사 이야기 있다. 예전에 어떤 분은 공연보고 '내일 당장 여행가자' 하고 여행 떠났다는 분 계신다. 아무래도 가족이 보면 좋고 요즘은 어린 친구들이 '맘마미아'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운 친구들도 있더라"라고 공연 관람을 독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