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대신 유럽과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반복된 러시아의 평화 협정 회피와 국내 여론의 압박 속에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 외교 노선이 급선회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며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와 유럽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미국산 무기를 유럽에 판매하고, 이를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방식의 방안을 수용했으며, 50일 내 러시아가 휴전 합의에 이르지 않으면 러시아 및 교역국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장거리 무기를 제공하면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나 제2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타격할 수 있겠냐고 묻기도 했다. 이들 지역의 군사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물론이다. 무기만 주면 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지 아직 불확실하지만, 휴전을 거부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는 불과 5개월 전 같은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질책하고, 취임 이후 줄곧 유럽에 비판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대조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트럼프 중재 외교의 급변”이라 평가했다.
변화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몇 달씩 진행해온 휴전 및 평화 협정 체결이 되려 러시아의 반발과 공세 확대로 이어진 데에 따른다. 무엇보다 밀접한 관계를 이어오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수장과의 회담 전 내각에 “푸틴에게서 헛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고 NYT가 전했다.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내 여론도 영향을 미쳤다. 하버드대 미국정치센터(CAPS)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의 여론조사(6~8일, 오차범위 ±2.2% 포인트)에서 유권자 2044명 중 60%는 “트럼프가 푸틴에게 충분히 강경하지 않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층의 73%, 중도층의 58%, 공화당 지지층의 48%가 같은 평가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외교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과반(53%)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 방어 전략을 지지하며 대러 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엔 직접 개입보다는 간접 지원을 통해 부담을 줄이려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거듭 이번 전쟁을 “바이든의 전쟁, 민주당의 전쟁”이라 칭하며 거리를 두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폴리티코가 전했다. NYT 역시 “트럼프가 전쟁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매우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 일부는 푸틴 대통령과 직접 관련 있다”며 “필요할 경우 푸틴 대통령이 직접 논평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 입장이나 러시아 및 교역국에 대한 2차 관세 경고에 대해선 “전쟁 지속의 신호”라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도 타스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을 용납할 수 없으며, 우리는 정치적, 외교적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