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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만족' 경쟁?…"황금 '트럼프호' 쇄빙선이라도 줘야 하나"

중앙일보

2025.07.14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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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 부과가 예고된 미국의 관세를 낮추기 위해 각국이 ‘트럼프 만족시키기’ 전략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 도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상호관세 발표 때부터 확인된 주먹구구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가 경제적 효과보다 미국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된다는 분석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시적 성과물을 주는 대가로 실익을 확보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20% 대 0%’ 완패 대가로 ‘베팅’한 베트남


외교소식통은 14일(현지시간) 중앙일보에 “영국과 함께 관세 협상을 마무리한 베트남은 미국에 20%의 관세를 내고 미국산 물품엔 0% 관세를 적용하는 굴욕적 조건을 수용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완승’으로 홍보했지만 어느 쪽이 더 이익인지는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지난 4월 46%의 관세를 통보받았다. 20%는 기존 관세의 절반 이하다. 25%의 관세 서한을 받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30%의 유럽연합(EU)보다도 낮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11일 베트남 하노이 국제공항에 내려 베트남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의 입장에선 20%의 관세도 부담이다. 그러나 수출 국가에게 관세는 어디까지나 상대적 개념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무관세로 인해 “미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또는 대형 엔진 차량이 베트남으로 수출될 것”이라는 기대를 피력했지만, 아직 오토바이 등이 주력인 베트남 자동차 시장에서 고가의 미국 대형 차량들이 급격한 판매 신장을 이룰지는 미지수다.



“베트남의 진짜 성과는 ‘시장경제’ 지위”


통상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거둔 진짜 성과는 다른 데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마무리 한 뒤 자국 언론에 “베트남의 시장경제지위(MES) 인정과 일부 첨단 기술 제품에 대한 수출 제한 해제를 제안했다”는 것을 관세 합의 핵심 성과로 내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 도중 두 손을 들어 즐거움을 표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통상당국 관계자는 “미국은 확답하지 않고 있지만 협상 과정에서 베트남의 시장경제지위 격상에 대한 사실상의 사전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면 베트남은 ‘남는 장사’를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베트남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12개국과 함께 ‘비시장경제(NME)’로 분류돼 있다. 자국 내 시장 가격을 조작하는 국가로 보기 때문에 미국은 베트남에 베트남 국내 가격이 아닌 국제 표준 가격을 기준으로 한 수백%의 징벌적 반(反)덤핑 관세를 부과해 왔다. 만약 시장경제 지위를 확보할 경우 베트남은 대미 수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대폭 낮추는 실익을 얻게 된다.



미얀마, 40% 관세에도 “트럼프 땡큐”


미국으로부터 40%의 고율의 관세를 통보 받은 미얀마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히려 감사 서한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서한이 정통성이 없던 미얀마 군사정권을 ‘공식 집권 세력’으로 처음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 수장 민 아웅 흘라잉이 2021년 3월 27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국군의 날을 맞아 군사 퍼레이드에 참가한 모습. 그동안 미얀마의 합법 정부의 수장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40% 관세 통보 이후 감사 서한을 보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 쿠데타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받은 직후 서한을 공개하고 “미국이 미얀마를 독립 국가로 인정한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sincerely thank you)를 표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당신(트럼프)이 겪었던 어려움처럼, 우리도 심각한 선거 사기와 상당한 부정행위를 경험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병상련을 표하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하자 이를 ‘부정선거’로 규정하며 이듬해 2월 쿠데타로 집권했다. 미국은 그간 군정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공식 접촉을 피해왔다.



“이미 프라이빗 협상…트럼프 승리처럼 만들어야”


미국무역대표부(USTR) 아시아 담당 부회장 출신의 태미 오버비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선임고문은 이날 통화에서 “개인적 정치 문제로 브라질에 50%의 관세를 부과한 것처럼 현재의 협상은 이미 일반적인 무역이나 안보협상과 거리가 먼 ‘프라이빗’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0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50% 관세 부과 발표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브라질 국기를 들고 반트럼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윌리엄 라인시 연구위원 역시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공개적이고 가시적 승리일뿐 무엇을 얻어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최소한의 피해만 입으면서 어떻게 트럼프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관세에 대한 최종 판단은 오로지 대통령이 하게 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밝혀온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안을 제시해 실익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경민 기자


“황금 ‘트럼프 쇄빙선’이라도 주고 싶다”


이와 관련 안세령 주미대사관 경제공사는 이날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주최한 대담에서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무역 불균형 해소 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비관세 장벽 해소와 제조업 협력 증진이 병행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 공사는 다만 “한국은 이미 미국 농산물과 에너지 제품의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이며 미국산 소고기와 LNG(액화천연가스)의 최대 수입국”이라며 “(사실상 0%인)관세율 인하나 미국산 제품 추가 구매, 미국 내 추가 투자와 같은 양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협상팀 내부에선 “실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카타르에서 초호화 제트기를 골프 ‘컨시드’처럼 받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 ‘트럼프호’로 명명한 황금 쇄빙선이라도 왜 못 주겠느냐”는 진농반농의 토로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달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해 “강대국이 하는 일종의 정치 행태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어떤 수모든 강압이든 이런 것도, 제 개인 일이 아니고 국민 모두의 일이니까 필요하면 가랑이 밑이라도 길 수 있다. 그게 뭐 중요하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저 또한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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