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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밀착 배치한 손민수ㆍ임윤찬, '듣기'의 황홀함 선사하다

중앙일보

2025.07.1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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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서로 손과 얼굴이 잘 보이는 방향으로 피아노를 배치해 연주한 손민수ㆍ임윤찬(왼쪽부터). 사진 현대카드·목프로덕션
애호가들이 기다렸던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손민수·임윤찬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이 지난 14일, 롯데콘서홀에서 열렸다. 사제 지간인 두 사람이 함께 하는 흔치 않은 무대인만큼 공연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프로그램은 브람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34b’와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춤곡 Op.45’, 그리고 작곡가 이하느리가 편곡한 R.슈트라우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장미의 기사 모음곡’이었다. 모두 피아노 5중주, 관현악곡, 오페라의 주요 장면을 발췌해 구성한 관현악 모음곡을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만든 것이다.

첫 곡 브람스는 현악을 중심으로 한 실내악곡이었던만큼 긴밀하고 밀도 있게 호흡을 맞춰나갔다. 두 사람은 피아노를 무대 가운데 두고 마주 보는 형태로 앉지 않고, 연주자가 중심에 앉아 서로의 옆 모습을 보며 앉는 형태를 취했다. 임윤찬은 2020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공연을 했을 때도 이 형태로 앉았다. 마주 보는 위치가 아닌 연주자끼리 최대한 몸을 붙여 가깝게 앉는 모습은, 실내악 연주자들이 서로의 움직임과 호흡, 시선을 응시하며 연주하는 것처럼 긴밀해진다. 브람스에서 제1피아노를 맡았던 손민수는 1, 2악장의 주제를 묵직하게 리드하고, 3, 4악장에서 두 사람은 다채롭고 풍성한 화성의 향연으로 작품의 매력을 끌어올렸다.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임윤찬의 듀오 공연. 1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사진 현대카드ㆍ목프로덕션
교향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라흐마니노프와 슈트라우스 작품에서는 임윤찬이 제1피아노를 맡았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춤곡’은 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던 작곡가 본인이 가장 아끼는 곡이다. 자신의 삶과 음악 여정의 많은 요소들이 집약되어 있어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죽음과 춤곡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다이내믹하게 다뤄내 효과도 드라마틱하다.

낭만과 우수에 찬 멜로디, 우아한 왈츠로 움직임을 더한 1, 2악장, 그리고 ‘진노의 날’(Dies Irae) 주제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3악장에 이르면 죽음을 앞둔 자의 사색이 느껴지며 멜랑콜리해진다. 반전은 이 어두운 정서를 춤곡으로 전환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는 점. 임윤찬과 손민수는 수시로 변하는 템포와 다이내믹을 긴밀하게 표현하는데, 음표 하나라도 악보에 써 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전달해준 연주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하느리가 편곡한 슈트라우스의 곡은 원본인 오페라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반영했다. 악보만 보면 화성에 감탄하게 되고, 극을 살려낸 다이내믹의 변화가 어마어마한데, 연주는 마치 노래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호흡과 루바토, 왈츠의 리듬이 즐겁다. 반주 부분에는 피아노의 특징을 고려해 효과를 극대화한 부분도 많은데, 슈트라우스만의 색채감을 살려내기 위해 만들어낸 화성은 ‘찬란했다’. 무엇보다 두 연주자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마모되지 않고, 끝까지 하나의 목소리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내는 부분은 제일 근사했다.

이날 공연의 여운은 ‘듣기’라는 단어로 귀결되었다. 손민수는 "듀오 공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연주자의 목소리를 먼저 잘 듣는 것, 이후 서로를 위해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임윤찬은 "누군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연주로 이야기하는 자리라 믿으며, 그저 온 몸으로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 이하느리는 슈트라우스도 자신도 아닌, 긴 시간 귀 기울여 들었던 두 피아니스트의 스타일을 고려해 곡을 썼다고 했다. 존경하고 아끼고 사랑해 온 스승과 제자, 동료가 오랫동안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고, 알고, 이해해 온 시간이 완성해 낸 무대였던만큼 감동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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