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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소고기 시장 개방에 집착하는 트럼프..."미 제조업 붕괴의 민낯"

중앙일보

2025.07.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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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서울에서 열렸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관세 협상이 진행되면서 한국에 대한 요구사항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농축산물 검역과 수입제한, 플랫폼 기업 관련 규제 등 비관세 장벽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15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은 관세 협상을 진행하면서 이런 비관세 장벽 해소를 한국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30개월령 소고기 수입을 비롯해 쌀 시장 추가 개방, LMO 감자 수입, 사과 등 과일의 검역기준 완화 등이다. 아울러 미국 플랫폼 기업 관련 규제 완화 등도 비중 있게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다른 협상 대상국에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하는 조건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농축산물, 디지털 등 비관세 장벽 해소에 집착하는 건 역설적으로 제조업 붕괴를 겪은 미국이 내세울 만한 제조업 분야가 많지 않아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나타낼 수 있는 품목은 농축산물·서비스·방위산업 정도”라며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비교우위 품목의 수출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의 제조업 기반은 크게 후퇴했다. 지난 40여년간 제조업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산 제품 수입 급증으로 미국의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근로자의 임금이 하락했고, 2001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 37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국외교협회(CFR) 보고서에선 미국의 제조업 고용률은 1970년 민간 부문 고용의 31%에서 2023년 9.7%로 감소했는데, 이러한 감소가 중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가속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농축산업이 발달한 미국 중서부·남부(아이오와·텍사스 등)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는 점도 있다. 그가 지지자들의 요구 사항을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는 설명이다.(장상식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원장)

트럼프식 협상 스타일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일본에 쌀, 한국에 소고기 등 시장 개방에 민감한 품목을 건드리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 통상전문가는 “만약 상대국이 농축산물 시장을 열면 그대로 상징성을 지니고, 이를 끝까지 거부할 경우 다른 분야에서 더 큰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 4월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뒤 20여개 국가와 협상을 벌였고, 이 중 영국·베트남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국가는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미국에 제시한 공통점이 있다. 가장 먼저 관세 협상을 타결한 영국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확대 압박에 최대 1만3000톤의 무관세 쿼터를 부여하는 등 접근성을 확대했고, 두 번째로 합의한 베트남도 소고기·돼지고기·가금류 등 무관세 수입 조건을 미국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현재로써는 오히려 다른 국가와 협상에선 걸림돌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당초 협상 타결이 임박했던 것으로 알려진 EU·인도·멕시코 등은 막판 농축산물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이 상대국에 부여한 시간은 짧은데, 민감도가 높은 시장 개방 요구를 받아든 협상 상대국은 사회적 합의 등 내부 논의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미 통상협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연합뉴스]

한국도 비슷한 처지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4일 농축산물 수입 확대 등에 대해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며 미국의 요구에 대한 일부 수용 가능성을 내비치자 당장 농민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우 생산자단체인 전국한우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농축산업의 고통과 희생을 당연한 전제로 여기고 있다”며 “전국의 농축산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한우협회는 월령 제한이 폐지되면 국내 시장에서 광우병에 대한 불안이 커져, 소고기 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한우 소비가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소고기 월령 제한 폐지 등으로 인한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한 통상당국 관계자는 “30개월 월령 제한이 역으로 한국에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해에만 미국산 소고기 냉장용 9억4000만 달러어치, 냉동용 12억 달러어치를 들여오며, 미국이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 자리를 지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산 30개월령 이상 수입을 열어주면 국내 소비자들은 미국산 대신 호주산 소비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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