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국영 중앙(CC)TV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수출을 승인했다”며 “중국 시장에 H20을 빨리 출하할 것을 기대하며, 매우 기쁘다”라고 말했다.
H20은 엔비디아의 ‘중국용’ AI 반도체다. 2022년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고성능 AI 칩의 중국 수출을 제재하기 시작하자, 엔비디아는 성능을 약간 떨어뜨린 AI 칩을 중국 전용으로 설계해 팔아왔다. 지난해 출시한 ‘최신 중국용’ H20은 엔비디아 매출의 15% 안팎을 차지해 왔다.
그러나 지난 4월 트럼프 정부는 H20의 중국 판매도 막았다. 앞서 올 1월 중국 딥시크가 고성능 추론용 AI를 내놓아 미국을 충격에 빠트리면서, 대중(對中) AI 반도체 수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랬던 수출 금지가 3개월 만에 풀린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결정은 지난 10일 황 CEO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후 내려졌다”라며 “황 CEO는 AI 칩을 중국에 계속 팔기 위해 워싱턴 정치인들에게 수개월 간 로비를 벌여왔다”라고 보도했다.
이날 엔비디아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H20 판매 재개 신청 사실을 알리며 “최근 황 CEO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AI 선도를 위한 미국 행정부의 노력에 대한 엔비디아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황 CEO가 중국 베이징에서 정부 및 업계 관계자를 만나 AI 기회에 대해 논의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디지털트윈 AI용으로 쓸 수 있는 중국 전용 그래픽카드 신제품도 출시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엔비디아는 H20 칩 재고 등으로 2~4월 매출에 45억 달러(약 6조원) 손해를 봤고, 다음 분기 매출에도 80억 달러(약 11조원)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H20 수출 재개로 이런 장애물이 치워진 셈이다.
H20은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보다 1세대 뒤떨어졌거나 용량이 작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HBM을 탑재한다. 이번에 중국 수출이 재개된 H20의 정확한 메모리 사양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한국 메모리가 간접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다른 반도체 기업의 중국 사업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지난 4월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와 함께 AMD AI 칩의 중국 수출도 막았고, AMD는 이로 인한 재고충당(판매가 불투명한 재고의 비용 처리) 등 손실이 1조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아직 AMD나 인텔 AI 칩의 대중 수출 재개 소식은 없다. 업계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중 수출 제재에 원칙이 없어, ‘각개격파 협상’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6% 감소한 삼성전자도 대중 수출 제재 영향이 컸다. 회사는 급격한 실적 악화 이유를 ‘반도체 재고충당과 첨단 AI 칩 중국 판매 제약’을 들었다. 지난 1월부터 모든 HBM의 중국 수출이 막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