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는 지난 4월 커피와 밀크셰이크에도 ‘설탕세’를 붙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달 21일 의견 수렴 기간이 종료된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18년 탄산음료에 일명 설탕세로 불리는 청량음료산업세(Soft Drinks Industry Levy)를 도입해 ‘성공의 맛’을 본 후, 이를 더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 음료 100mL에 설탕이 5g 이상 들어 있으면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젠 4g으로 더 낮추려 한다.
가격 오르면 설탕 든 음료 소비 줄어
영국의 경우 설탕세 도입으로 단맛이 많이 들어간 음료 매출이 3분의 1 이상 줄었다. 그 덕분에 비만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은 물론이고, 어린이 천식 같은 질병도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영국 정부는 여기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모든 가공식품, 즉 인위적으로 만든 음식 전체로 설탕세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미국도 다섯 개 주에서 설탕세를 도입했다. 탄산음료, 과일음료, 커피 등 음료 가격이 평균 33% 오르자, 소비자의 구매량도 33% 줄었다. 가격이 오르니 소비자들도 덜 산다는 얘기다. 설탕세가 실제로 설탕 소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설탕은 정말 위험한 걸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료는 충치, 비만, 당뇨, 심장병, 뇌졸중, 암 등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된다. 특히 음료로 설탕을 섭취하면 몸에 더 빠르게 흡수되어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고, 간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설탕은 비만과 당뇨병 위험 높여
WHO 권고, 태국·필리핀도 도입
영국은 커피 등으로 확대 추진
최근 전 세계 50만 명의 자료를 모아 분석한 미국 브리검영대 카렌 델라 코르테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달콤한 음료를 하루에 350mL 더 마실 때마다 제2형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25% 증가했다. 미시간대 연구에서는 한 캔 마실 때마다 12분의 생명이 단축된다. 한국의 경우도 청소년 비만이 계속 늘어나면서, 최근 10년 사이에 청년 당뇨 환자는 두 배나 증가했다. 그냥 달콤한 음료 한 잔 마시고 기분 전환하는 정도의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부터 각 나라에 설탕세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료에는 가격의 20% 정도 세금을 붙이도록 하는 방식이다. 마치 담배에 세금을 부과해 금연을 유도한 것처럼, 세금 정책으로 설탕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는 기업과 소비자의 자율 규제만으론 설탕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중단시킬 수 없음을 깨달은 결과다. 이를 기점으로 2023년까지 117개 나라와 지역에서 설탕세를 도입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도 시행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설탕과의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21년 기준으로 비만 때문에 떠안게 된 사회적 비용은 약 15조6000억원에 달한다. 흡연으로 인한 비용보다 3조원이 더 많은 액수다. 그러니 건강보험 부담도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음식은 너무 달다. 설탕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다른 나라보다 절대 작지 않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기업의 자율 규제에만 기대거나 국민 스스로 조심하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설탕세 도입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설탕세는 국민 건강증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설탕세로 확보한 세금은 국민 건강을 위한 시설과 제도에도 투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병원 확대, 청소년·노인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 예방 중심의 건강 캠페인 등을 통해 건강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설탕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한 투자 재원이 되어 줄 것이다.
설탕세는 국민 건강을 위한 투자 재원
설탕세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민 1000명 중 58.9%가 설탕세 도입에 찬성했다. 그리고 82.3%는 청량음료에 설탕 경고 문구를 넣는 데 찬성했다. 담뱃갑의 경고 문구처럼 설탕도 그 위험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설탕세는 국민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 건강보험료를 인상할 바에는, 설탕세 같은 건강세를 먼저 고려해 보자는 목소리도 높다. 설탕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다. 많은 청소년이 급식 대신 편의점 음식과 단 음료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이는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청소년기에 지나친 설탕 섭취는 뇌의 보상 체계를 교란해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고, 비만과 당뇨의 위험도 커진다. 설탕은 학습 능력과 기억력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세금이 늘어나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설탕세로 모은 일부 세금은 기업이 친건강 제품을 개발하는 데 쓰도록 지원할 수 있다. 또 건강한 소비를 하는 시민에게는 ‘건강넛지포인트’라는 보상 포인트를 제공해 친건강 제품을 구매하게 하면 구매력도 올라가 기업에도 이득이다. 이 포인트는 나중에 의료비로 쓸 수 있게 하거나, 보험사가 이 포인트를 저축해 의료비로 쓸 수 있게 하는 상품을 만들도록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설탕세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기업들도 이참에 설탕 사용을 줄이고 건강한 K-푸드를 개발한다면, 수출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국민 건강이 좋아지면 기업의 생산성도 오르고, 의료비 부담은 줄어드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이미 국회와 여러 연구기관에서도 설탕세의 필요성을 검토했다. 이제 더는 설탕세 도입을 늦출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