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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거리에서] 여름밤 거리에서 하늘을 보라

중앙일보

2025.07.15 08:06 2025.07.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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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서강대 교수
여름밤 거리에서 하늘을 보라. 맑아진 공기 덕분에 별이 제법 눈에 띤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며 평생 감탄하며 살다 간 사람들이 인류역사에 적지 않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 모두 시궁창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누군가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본다’고 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그의 대리석 시비에 새겨져 있다. 그는 별을 최애했으며 ‘별에서 온 아이’라는 동화도 발표했다.

철학자 칸트는 한 발 더 나갔다. 실제로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다. ‘나에게는 생각할수록 신비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그는 특히 도덕법칙, 즉 인간의 양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깨달아 바르게 행하려는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이마누엘 칸트를 두고 도덕철학을 높이 세운 위대한 철학자로 평가한다.

김지윤 기자
칸트는 이와 함께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어떤 경우에도 목적, 결과물에 앞서 절차적 정의를 중시했다. 한마디로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을 주창하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와는 대치되는 개념이다. 칸트의 시각에서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논리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논리도 배척의 대상이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벤덤의 논리에 빠져 살았다. 중·고등 시절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 교훈이 넘쳤다. 극도로 가난했던 나라, 일정 부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생명을 다했다. 더 이상 목적이나 결과물이 과정을 억눌러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결과물을 중시하고 있다. 모로 가서 서울로 가면 안 된다. 과정이 아름다운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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