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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기자 ‘얼공’ 이왕 시작됐으니

중앙일보

2025.07.15 08:12 2025.07.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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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정치부 기자
지난달 8일 대통령실이 출입 기자단과의 질의응답을 생중계하겠다고 밝혔을 때 궁금했다.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국민의 알 권리와 브리핑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의 설명을 듣고서는 ‘지금까지는 불투명했다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깊은 뜻이 따로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부 강성 여권 지지층의 반응을 보니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기자를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그들이 보기에 질문하는 기자의 얼굴을 영상으로 찍어 박제하는 ‘얼공’이 기자를 통제하기에 좋은 수단으로 본 것 같다. 친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기자가 얼굴 까는 것도 쫄리면 그만둬야지 않을까요”라는 댓글을 보니 심증은 더욱 굳어졌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 13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차관급 인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실제 그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권력자에게 질문해봤던 경험에 비춰 보면 보는 이가 많을수록 긴장도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세세한 표현까지 더 고민하게 되고, 옷매무새 또한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그 반대 효과도 분명하다. 보는 이가 많은데, 더욱이 영상 기록으로 남을 내용인데 허투루 질문할 수 있을까? 평소엔 격의 없는 사이였어도 카메라가 나를 잡고 있다면 인정사정을 봐줄 겨를이 없어진다. 더군다나 기자 동료와 선후배가 보기에 민망한 수준의 질문을 하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없다. 쉽게 말해 기자 또한 ‘열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마냥 좋기만 할까.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일괄 제한한 ‘6·27 대출 규제’ 발표 직후 대통령실에서 나온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강 대변인)라는 발언은 영상으로 남아 있다. 과거 대통령실이었다면 ‘대통령실 관계자’란 익명 뒤에 숨었을 얘기지만 이제는 그의 발언 또한 박제됐다.

지금은 정권 초반의 ‘허니문 기간’이고, 각종 난제가 아직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올라오지 않은 때다. 그러니 대통령실과 기자단은 비교적 평화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대 모든 정권에서 난감한 일은 생겨왔고, 듣기에 불편한 질문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기자든 당국자든 진짜 실력이 나온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행사에 관해 질문했다고 온라인에서 좌표가 찍힌 기자도 있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대통령실 기자단이 생중계에 무난히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 얼굴 공개가 애초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도입된 만큼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열기가 더해지기를 기대한다.





허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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